한국 시, 아랍어로 처음 번역한 이집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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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직도 영어 번역본과 함께 읽어야만 한국 시를 소화할 수 있어요. 더 공부해야 합니다.”

 한국 시를 아랍어로 처음 번역한 마흐무드 아흐마드(41·사진). 4년에 걸쳐 고은의 『남과 북』, 김광규의 『상행』 등 두 권을 아랍어로 옮기는 ‘업적’을 이뤘는데도, 퍽 겸손했다. 『상행』은 올해 이집트 에서 아랍어로 정식 출판될 예정이다. 아흐마드는 지난달 ‘이집트 현대 시와 한국 현대 시에 나타난 장소의 이미지에 관한 비교 연구’를 주제로 명지대에서 비교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사로 일하던 이집트 카이로대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20세기 식민지 경험 등 한국과 이집트가 공통점이 많다는 점에도 매료됐다. “한국에서 아랍어를 가르쳐 보라”는 지인의 권유를 받아 2006년 방한했다.

 한국에 온 뒤 아흐마드는 구하는 대로 시집을 읽어댔다. 사서 읽은 한국 시가 4000~5000편이 넘었다. 서툰 한국어가 문제였다. ‘허준’ ‘사랑과 전쟁’ 같은 드라마를 보며 파고 들었다.

 아흐마드는 2009년 명지대 비교문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막상 논문을 쓰려고 하자 아랍어는 물론 영어로 된 참고 문헌조차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직접 참고문헌을 만들어 가며 논문을 썼다. 이번에 번역한 시집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그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선구자가 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는 점에서 나는 행운아”라고 했다.

 번역한 시 외에도 김승희의 ‘달걀 속의 생(生)’, 천상병의 ‘귀천’을 좋아한다는 아흐마드는 이집트에 돌아가서도 한국 시를 계속 번역할 계획이다. “이제는 한국이 제2의 조국입니다. 이 위대한 나라의 문화와 문학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생각입니다.”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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