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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애플 소송 배심원장의 월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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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창세
제일특허법인 대표변리사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의 판결일이 다가오면서 과연 삼성이 제기한 재심리 청구가 받아들여질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배심원장(jury foreman)인 벨빈 호건이 평결 후 행한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에서 드러난 배심원 행동규범 위반행위(jury misconduct)가 재심리 사유에 해당하는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호건이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힌 내용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왜 애플 특허가 무효가 아니냐는 질문에 호건은 엉뚱하게도 무효 판단 법리가 아닌 침해 판단 법리를 적용해 애플 특허가 유효라고 답변하였다는 점이다.

 참고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침해로 제소된 제품이 관련 특허와 완전히 동일하면 이를 문언적(文言的) 침해라 하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매우 유사하여 실질적으로 동일한 경우에는 이를 균등론적 침해라 한다. 이 균등성을 판단하기 위해 미 법원은 발명의 성격에 따라 대체로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는데, 하나는 치환가능성(interchangeability)을 보며, 또 하나는 기능·작용방법·효과(function, way, result)의 3분법을 적용해 판단한다. 이와 달리 특허의 유·무효를 판단하기 위해선 해당 기술 분야에서 종사하는 보통의 기술자가 특허출원 시 이미 알려진 기술을 토대로 제시된 선행 기술로부터 특허된 발명을 용이하게 도출할 수 있는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어이없게도 BBC와의 인터뷰에서 호건은 애플의 기술은 선행 기술과 치환 가능성이 없고, 기능·작용방법·효과도 제시된 선행 기술과 달랐기 때문에 유효라고 답했다. 즉 침해판단에 적용하는 법리를 무효판단에 적용하여 특허가 유효라 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만일 이러한 호건의 엉터리 법률지식이 호건 개인의 오판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다른 배심원의 평결에도 영향을 미쳤다면 더욱 문제는 심각하게 된다. 이를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이 호건은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특허가 왜 유효인지를) 내 동료 배심원에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오직 나만이 특허 경험이 있으니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호건은 배심원 사이에서 의견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잘못 알고 있는 특허법 이론과 경험을 토대로 평결을 유도했음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배심원 사이에서 판사 노릇을 한 것이다. 이것은 배심원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배심원은 판사의 지침(jury instructions)에 따라 주어진 증거 자료를 토대로 오로지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만을 해야 하며 개인의 경험이나 법 이론 등을 적용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특히 그러한 것을 다른 배심원과 논의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이를 어기면 배심원 행동규범 위반행위가 되어 그 평결은 파기되고 새로운 배심원단이 구성되어 재심리가 열릴 수 있다. 앞으로 있을 법원의 결정은 애플·삼성 소송의 향방을 바꿀 수 있으므로 업계는 그 귀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창세 제일특허법인 대표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