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특허괴물 나와라 한국형 ‘특허에인절’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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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한탁돈(컴퓨터공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학내벤처로 설립한 칼라짚미디어. QR코드를 대체할 것을 목표로 ‘컬러코드’란 것을 개발했다. 흑백인 QR코드에 색깔까지 넣어 포함된 정보량을 늘린 것이다. 미국에 관련 특허 등록까지 했다. 그런 이 회사는 지난 6월 미국 등록 특허 4개를 팔았다. 특허를 사간 곳은 한국의 지식재산전문기업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Intellectual Discovery, 이하 ID)’. 칼라짚미디어의 이상용 이사는 “특허를 팔았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을 해결해 줄 뿐 아니라 시장 개척까지 알아서 해 주니 일석이조 이상”이라고 말했다.

 ID는 직접 생산·제조·판매를 하지 않으면서 특허권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주도해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 같은 대기업들로부터 447억원을 출연받아 만들었다. 특허를 사들여서는 사용권을 주는 대신 로열티를 받거나, 특허 분쟁을 해결하는 게 주 수입원이다.

 요즘 흔히 말하는 외국의 ‘특허괴물(Patent Troll)’과 비슷한 회사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기술 벤처를 키우는 인큐베이팅 역할을 한다. 칼라짚미디어의 경우처럼 ‘세일즈 앤 라이선스 백’과 같은 방식을 통해 중소·벤처기업의 세계시장 진출을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이들 기업의 강력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세일즈 앤 라이선스 백’란 특허를 특정 기업으로부터 사들인 뒤 다시 그 기업이 특허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ID는 해당 기업으로부터 특허 사용료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사업화가 불투명한 초기에 특허를 팔아 사업에 필요한 목돈을 쥘 수 있다.

 칼라짚미디어가 ID와 손을 잡게 된 계기도 사업확장에 필요한 자금과 노하우 때문이었다. 칼라짚미디어는 미국 시장 진출을 생각했다. 그래서 현지 특허를 냈다. 그러나 독자적으로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특허 관리를 전문적으로 해 줄 파트너가 필요해 ID와 손을 잡았다. 미국 등록 특허 4개를 15억원 정도에 매각하고 2년간 로열티를 1억원씩 ID에 내기로 했다. 3년째부터는 매출의 1%를 로열티로 내되, 전체 지불 금액이 1억원을 채우면 그걸로 끝이다. 예컨대 1개월 만에 1억원을 다 냈다면, 그 뒤부터 칼라짚미디어는 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ID가 미국에서 컬러코드 특허를 사용하고 싶다는 업체를 찾게 되면 로열티 수입을 양분하기로 했다. 누군가 특허를 무단 사용할 경우 ID가 직접 분쟁 해결사로 나선다.

 ID는 지금까지 3∼4개 중소·벤처기업으로부터 25개 정도의 특허권을 사들였다. 디스플레이 입력장치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 N사도 5년간의 전용실시권과 재매입 선택권(옵션)을 받고 ID에 특허를 매각한 경우다.

 옛 제일은행(현 스탠다드차타드은행)과 캠코 등을 거쳐 ID의 초대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는 허경만(64) 대표는 “중소·벤처기업은 해외 기업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해도 정보·전문성 부족과 막대한 비용 때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세일즈 앤 라이선스 백 계약은 특허권이 벤처기업의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이 될 뿐 아니라 해외 특허분쟁의 대응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IP큐브 파트너스 등 두어 개가 ID와 비슷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ID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설립을 주도했고 나머지는 투자회사들이 만들었거나 펀드가 운영하고 있다.

◆ 세일즈 앤 라이선스 백

건물을 부동산 투자회사에 매각하고 입주해 일정기간 임차료를 지불하고 거주한 뒤 그 부동산을 다시 재매입하는 ‘세일 앤 리스 백(Sale & Lease Back) 모델을 특허권에 적용한 방식이다. 특허권을 보유한 기업이 ID와 같은 지식재산권 사업화 기업에 매각한 뒤 다시 라이선스를 받아 로열티를 내고 특허권을 사용한다. 자금 여력이 생기면 특허권을 재매입하는 옵션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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