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사즉생(死卽生)의 97, 부자 몸조심의 98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제8보(88~98)=치열하게 파고든 원성진 9단의 흑▲를 보며 강심장의 구리 9단도 살짝 긴장하고 있다. 지금 형세는 백이 좋다. 최고수들의 수준에서 보면 ‘매우 좋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흑은 지금 야수처럼 사나워지고 기회만 있으면 물어뜯으려 한다. 구리 9단도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88로 막아 93까지는 흔히 보는 외길 수순이다. 94로 두텁게 막은 것도 이 장면의 정수. 한데 95로 한 번 민 원성진은 A로 살지 않고 수순을 비틀어 97로 막아 왔다. 칼칼한 도전이다. 구리 9단은 장고에 들어갔다.

 백이 차단한다면, 즉 ‘참고도1’ 백1로 젖힌다면 흑은 필시 2로 끊어 사생결단에 나설 것이다. 백은 3, 5로 두 점을 잡을 수 있지만 흑 6, 8에 의해 위쪽 백이 위험해진다. 과연 이 백은 살 수 있는 걸까. ‘참고도2’ 흑1이 유명한 맥점이다. 그러나 흑은 4, 6의 속수를 동원해 10까지 목숨을 건진다. 죽지 않는다면 차단하는 게 마땅하다.

 하나 구리는 98로 참았다. ‘참고도’의 수순들은 그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빵때림을 줘야 하고 뭔가 어지럽다. 귀의 흑도 아직 죽지 않았다. 구리는 결국 98로 물러섰다. 바둑이 유리하면 마음이 넓어지고 골치 아픈 건 싫어진다. 관대해진 구리가 결국 부자 몸조심의 한 수를 두고 만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 [바둑] 기사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