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기본에 소홀하면 최갑복 또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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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홍권삼
대구총국 기자

요가대왕 최갑복이 배식구를 통해 달아난 지 나흘째인 20일 낮 경북 청도군 남산 일대. 경찰관 600명이 온 산을 이 잡듯 수색했다. 8마리의 추적견, 사람의 체온으로 위치를 찾아내는 특수헬기도 투입됐다. 그러나 이 시각 최갑복은 이미 청도를 빠져나와 경남 밀양에서 창원으로 가는 시외버스 속에 앉아 있었다.

 탈출 첫날 15m 앞에서 최갑복을 놓친 경찰은 22일 밀양에서 검거되기 직전까지도 청도에서 대대적 수색을 계속했다. 현장 경찰관의 입에서조차 “솔직히 우리도 범인이 아직 청도에 있는지 모른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였다. 다른 경찰관은 “혹시 탈주범이 산 속에서 잡힐 경우 책임 문제 때문에 청도 수색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후 문책 때문에 수색 시늉을 했다는 이야기에 더 가깝게 들린다. 이번 사건으로 경찰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기본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비판 앞에선 더욱 그렇다.

 탈주 당시 2명의 유치장 근무자는 폐쇄회로TV(CCTV) 화면에 비치지 않았다.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사각(死角)에서 졸거나 자고 있었다는 경찰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꿈틀거리며 자신의 몸에 연고를 바르고 배식구 틈으로 세 번씩이나 머리를 들이미는 동안의 인기척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곯아떨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근무 교대 전 술을 마시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기본을 지키지 않았던 건 한 시간여 뒤 유치장에 근무감독을 나온 상황부실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두 눈을 뜨고도 최갑복이 사라진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침에 밥 타러 나오지 않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도주 사실을 알아차렸다. 최갑복이 옷을 갈아입고 도주할 준비를 갖춘 다음이었다.

탈주자가 발생하면 즉시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역·터미널은 물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즉시 검문 강화령을 내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17시간이 지나도록 톨게이트는 평상시나 다름없는 무방비 상태였다. 최갑복은 훔친 차를 몰고 아무런 제지 없이 대구를 빠져나갔다.

 탈주범이나 도주범을 붙잡은 경찰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있다. “도피 중 한 번도 경찰의 검문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22일 검거된 최갑복의 입에서도 똑같은 말이 나왔다. 탈출 장면이 담긴 CCTV 공개를 거부한 경찰 간부는 “유튜브 등에 동영상이 공개되면 국가적 망신 아니냐”고 말했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기본을 지키지 못한 근무 태도다. 또 다른 최갑복이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