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손자에게 딱 걸린 롬니 실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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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히스패닉 상공회의소를 찾은 밋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 롬니는 이날 저소득층 유권자를 폄하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로스앤젤레스 로이터=뉴시스]

“오바마를 지지하는 47%의 사람들은 정부가 모든 걸 해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정부가 그들을 돌볼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소득세도 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미국 사회의 무전취식객(freeloader)들이다. (대통령이 된다면) 내 임무는 이런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그들 자신이 알아서 생계를 꾸려야 할 것이다.”

 밋 롬니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대형 사고’를 쳤다. 미국의 진보성향 잡지 마더존스는 17일(현지시간) 롬니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저소득층 유권자를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동영상에는 롬니가 지난 5월 17일 플로리다주의 보카 레이턴에서 30여 명의 부호들과 가진 기금 모금 만찬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 참가자들은 1인당 5만 달러(약 5600만원)를 냈다고 한다. 마치 몰래카메라의 한 장면 같은 이 동영상에서 롬니는 히스패닉 유권자들로부터 지지율이 낮은 것을 한탄하며 “아버지가 멕시코 부모님에게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도 했다.

 동영상이 불러온 파장은 컸다. 워싱턴포스트는 “롬니가 새로운 악재에 직면했다”고 보도했으며, 온라인 공간에서는 “롬니의 본성이 드러났다”며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 논란까지 일고 있다. 당장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책임자인 짐 메시나는 성명에서 “국민의 절반을 무가치한 사람들로 경멸스럽게 취급하는 사람이 미국인의 대통령으로 일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롬니 캠프엔 비상이 걸렸다. 이날 밤 긴급 기자간담회를 연 롬니는 “당시 발언은 문답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한 것”이라며 “신중하고 사려 깊은 표현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책 차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며 “대선 후보로서의 비전을 얘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선거전략을 얘기하는 자리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대신 “미국이 앞으로 나갈 방향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분명히 내 생각을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동영상을 잡지사 측에 전달한 사람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제임스 카터로 알려졌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CBS 등 미 언론들은 오바마가 부자 감세 반대를 선거 이슈로 삼는 상황인 만큼 동영상 파문이 미국 사회의 계층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다음 달 3일로 예정된 후보 간 첫 토론을 앞두고 오바마 측에 공격 소재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동영상 파문이 불거지기 직전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8월 말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롬니 캠프의 참모들이 연설문을 놓고 의견이 맞지 않아 연설 직전까지도 갑론을박했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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