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국책사업…] 3. 접점없는 이해대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는 전국 46개 해안지역을 대상으로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신청을 6월 말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5월 말 현재 단 한곳도 신청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이후 두차례 공모했지만 해당 지역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정부는 당초 핵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설 부지만 제공해주면 지역개발금으로 2천1백억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래도 유치하겠다는 지역이 없어 올해 지원금을 3천3백억원으로 올렸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핵폐기물 처리능력은 2008년이면 포화상태에 달하는 데다 공사기간이 적어도 5~6년 걸릴 것을 감안하면 올 연말까지 부지를 선정해야 한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이 중앙과 지방, 지역 내 갈등으로 12년째 표류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선 핵폐기물처리장 유치를 둘러싸고 주민간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실제로 전남 영광의 홍농읍과 낙월면 주민들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자발적으로 유치신청서를 군과 지방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군은 다른 읍.면 주민의 반대여론을 감안해 신청서를 반려했다. 이외에도 강원 양양, 전남 진도, 전북 고창, 충남 보령.태안, 경기 화성 등에서 핵폐기물처리장 유치를 둘러싸고 주민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

◇ 정치적 요인 개입〓정치적 차원에서 밀어붙이기식으로 결정된 국책사업은 이해조정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서울산업대 김재훈(행정학)교수는 "이해가 엇갈리는 세력들이 결정 당시의 명분과 투명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에 정부가 다른 합리적 이유를 들이대도 설득하기가 만만찮다" 고 말했다.

청주공항의 입지는 1983년 아웅산사건 직후 당시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이 "청주가 북한의 미사일 사격권 바깥에 있다" 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결정했다.

새만금 사업은 91년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신민당 총재가 만나 결정했으며, 1주일 만에 여야는 임시국회 추경예산안으로 2백억원을 배정했다.

92년 대선 때 김영삼(金泳三).정주영(鄭周永)후보도 각각 "전북의 지도를 바꿔놓겠다" "집권하면 조기 완공하겠다" 며 새만금 공약경쟁에 뛰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에선 정치인들이 이해를 조정하는 주역으로 나서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 많지만, 우리는 국회의원이나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역 이익을 대변하는 데만 급급한 실정" 이라며 정치인들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중앙.지방정부간 충돌=서울과 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신공항 고속도로가 건설되던 96년. 인천시 서구청은 경서동에 서울방면 진입이 가능한 인터체인지 건설을 요구했다. 건설교통부가 이를 거부하자 서구청은 신공항고속도로㈜가 공사과정에서 필요했던 토취장 사용허가 요청을 거부하는 맞대응 조치를 취했다.

비슷한 시기에 계양구청도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주변 그린벨트 지역 17만평을 공단으로 조성할 수 있게 해달라" 는 대정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행사가 제출한 개발제한구역 내 도로의 형질변경 요청을 보류해 버렸다.

이런 현상은 95년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이 직접선거로 뽑히면서 빈발했다. 주민의 이익에 민감해진 기초자치단체들이 자신의 고유권한인 형질변경허가권 등을 무기로 삼아 중앙정부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여기에 맞서 '특정 국책사업과 관련한 지자체의 인허가권을 제한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려 했다. 그러나 국회는 심의 끝에 "신공항 고속도로 건설이 늦어진 직접원인은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 정부의 졸속한 사업추진 때문" 이라는 이유로 특별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 부처간 갈등=완공되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운하가 될 경인운하 건설사업은 부처간 의견조율이 늦어지면서 기본계획을 세운 지 5년이 넘도록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건교부는 수해예방과 수상운송로 확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운하 건설이 불가피하다며 배수진을 친 상태. 그러나 환경부의 입장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잘 따져봐야 한다" 며 '계속 검토 중' 이다.

이 때문에 건설이 늦어지자 건교부는 올초에 우선 양측이 합의한 운하 구간 중의 굴포천 치수사업부터 하기로 했으나 이번엔 사업의 이름을 놓고 '경인운하 굴포천 방수로사업' (건교부)과 경인운하라는 표현을 뺀 '굴포천 방수로 사업' (환경부)으로 한동안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건교부가 양보해 굴포천 방수로 사업은 6월 중 착공된다.

기획취재팀〓민병관.전영기.이규연.최상연.정경민.신예리.김기찬.

김현기.이상복 기자 projec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