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시간 탐험 (32) - 최고의 흥행가 빌 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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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브랜치 리키는 '마하트마(Mahatma : 대성인)'로 불린다.

리키는 인종장벽을 무너뜨린 장본인이자, 현재 각 구단들이 선수 공급원으로 삼고 있는 팜 시스템의 고안자. 그밖에도 피칭머신 · 배팅 케이지 · 배팅 헬멧 등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였으며, 베로비치에 훈련장을 차림으로써 스프링캠프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가 없었다면 현재의 빅리그는 상상조차 어렵다.

여기 리키와는 다른 방식으로 메이저리그를 현위치까지 끌어올린 개척자가 있다.

빌 빅(Bill Veeck). 그는 최고의 흥행가이자 역사상 황당한 사건을 가장 많이 저지른 인물이다. 1914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빅은 시카고 컵스의 회장이었던 아버지 윌리엄 빅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야구와 연을 맺을 수 있었다.

빅이 야구판에서 가장 먼저 했던 '장사'는 열한살 때 관중석을 돌며 소다를 팔았던 것. 빅은 아버지가 사망한 1933년부터 본격적으로 구단 경영에 참여했다. 그는 리글리필드의 외야 펜스에 담쟁이 넝쿨을 길렀고, 최초로 오르간 연주를 실시했으며, 해설가 해리 커레이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

1941년 빅은 파산한 마이너리그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소속의 밀워키 팀을 샀다. 당시 밀워키에 도착한 빅의 수중에는 11달러밖에 없었지만, 4년 후 그는 구단을 27만5천달러에 팔았다.

빅은 구장에서 소방관들의 소방시험 · 결혼식 같은 이벤트를 치뤘으며, 관중에게 경품으로 돼지 · 맥주 등을 내걸었다. 현재 각 구단이 시행하고 있는 '방망이의 날' · '모자의 날' 모두 빅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다. 선수들의 백넘버 위에 이름을 넣은 것 또한 빅이 처음이었다.

1946년 파산 위기에 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사 선수단 전부를 흑인선수로 채우려던 계획이 무산으로 끝나자, 빅은 대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구입했다. 이듬해 아메리칸리그 처음으로 래리 도비라는 흑인선수를 기용한 빅은 그 이듬해에는 니그로리그 최고의 스타 새철 페이지를 데려왔다. 물론 리키와의 의도는 달랐지만.

인디언스를 단숨에 인기구단으로 만들며 큰 몫을 챙긴 빅은 1951년, 역시 파산 직전에 있던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도전했다.

1951년 8월 19일, 빅은 마침내 대형사고를 쳤다. 키 110m의 난장이 에디 가델을 타석에 내보낸 것이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투수 밥 케인은 웃느라 그랬는지, 스트라이크존을 못찾았는지 가델을 스트레이트볼넷으로 내보냈고, 가델은 바로 대주자로 교체됐다.

그러나 브라운스에서의 장부는 온통 빨간줄이었다. 동향팀 카디널스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1953년 브라운스를 팔아치운 빅은 1975년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사며 재기를 노렸지만, 5년 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가끔씩 메이저리그의 경기수준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흥행 카드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메이저리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야구가 돈이 되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빅은 바로 그것을 일깨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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