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삼성 OLED TV … 수조원 들인 신기술 유출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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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IFA 2012’ 개막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의 유럽 마케팅 담당 마이클 졸러(오른쪽)가 패션모델 앤절라 벨로트와 함께 삼성전자의 55인치 OLED TV를 소개하고 있다. 운송 도중 사라진 두 대와 같은 사양의 제품이다. [연합뉴스]

삼성전자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두 대가 독일로 운송되던 도중 사라졌다. 이 제품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가전쇼 ‘IFA 2012’에 전시될 예정이었다. 삼성전자는 4일 “베를린 현지에서 전시할 물품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OLED TV 두 대가 없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독일과 한국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수원사업장에서 IFA 전시용 물품을 포장한 건 지난달 21일. 물품들은 대형 나무상자 수십 개에 나누어 담겨져 대한항공 항공기를 통해 24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고, 이후 트럭에 실려 28일 베를린으로 운송됐다. 그러나 베를린 현지에서 전시회를 준비하던 삼성전자 직원들이 한국에서 온 화물을 열어보니 그 가운데 한 상자에서 OLED TV 두 대가 사라지고 없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화물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뒤 곧바로 주말이어서 통관과 운송에 시간이 걸렸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옮겨지는 나흘 동안 이 화물이 어디에 보관되고 있었는지, 안전하게 보관됐는지를 현지 경찰이 추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독일로 옮긴 OLED TV는 모두 55대. 이 가운데 30여 대가 IFA 전시용이었고 나머지는 독일 내 각 대리점에 전시될 예정이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운송 중 파손될 수 있기 때문에 여분을 넉넉히 준비했다. 박스가 통째로 사라진 것도 아니고 한 박스에서 TV 두 대만 감쪽같이 사라진 점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 제품이 사라진 지점이 독일에서인지 국내에서인지 확인하지 못해 양국 경찰에 모두 신고했다.

 OLED TV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차세대 TV다. 화면 뒤편에서 빛을 쏘아주는 백라이트 없이 OLED 자체가 빛을 낸다. 백라이트가 필요없다 보니 TV 몸체의 두께와 무게를 LCD(액정) TV의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LCD보다 화면 응답 속도가 1000배 이상 빠르고 잔상이 거의 없다. 업계에서는 향후 5년간 시장 규모가 500배 이상 커질 ‘꿈의 TV’로 불린다. 이 분야에서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사건이 단순 분실이 아니라 기술 유출을 위한 절도 사건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많은 전시 물품 가운데 미래 시장성이 크고 삼성이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제품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최첨단 기술을 빼내기 위한 조직적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기술 유출을 노린 절도라면, 삼성전자에는 상당한 규모의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

개발비로만 수조원을 투입한 데다 비슷한 기술 수준의 경쟁업체가 등장할 경우 시장 점유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OLED TV를 입수한다 해도 곧바로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내기는 어렵지만 추격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2001년 4월 미국 국제방송장비전시회(NAB)를 앞두고 63인치 PDP TV를 도난당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삼성전자는 현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다.

박태희 기자

◆OLED(Organic Light-Emitting Diode)=뒤에서 빛을 쏘아주는 백라이트 없이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발광다이오드를 채용한 디스플레이. LCD보다 선명하면서 전력 소모는 적어 차세대 TV로 거론돼 왔다. 소형 OLED 패널은 삼성전자만 양산 체제를 갖춰 갤럭시S 시리즈와 갤럭시 노트 등 스마트폰에 적용하고 있으나 대형 패널이 필요한 TV 제품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출시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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