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안되면, 주력도 바꿔! … '번개표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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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표' 전구를 만드는 회사로 잘 알려진 금호전기의 박명구(51) 사장은 최근 틈만 나면 국내외 경쟁업체의 제품을 직접 뜯어 부품 하나하나를 살핀다. 박 사장은 "경영자는 자신이 만드는 생산제품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옳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연구소의 과제를 직접 챙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이 개발한 기술로 부가가치를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경영지론이다.

그는 디자인 공부에도 열심이다. 서울 마포동에 있는 회사 빌딩에서 지난주 기자와 만난 박 사장은 "제품 성능만으로 승부를 겨루던 시대는 지났다"며 "올해는 디자인 전문 기관의 교육 과정을 직접 수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호전기는 이달 말로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박 사장은 "지금까지 금호전기는 전구 하나로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만 믿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경쟁에서 낙오된다. 앞으로 80주년, 100주년이 될 때까지 무엇을 먹고 살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금호전기의 사업구조는 최근 확 변했다. 회사의 뿌리 사업인 전구의 매출 비중은 30%도 안 된다. 나머지는 LCD(액정표시장치) TV 등에 들어가는 냉음극 형광램프(CCFL)와 백라이트유닛(BLU) 등에서 번다. 이 같은 구조조정 이면에는 뼈 아픈 추억이 있다. 박 사장이 금호전기 부사장에 취임한 때는 1998년. 당시 금호전기 사장이었던 큰형의 부름을 받고 외환위기 직후 벼랑 끝에 몰린 회사를 되살리는 소방수로 나섰다.

박 사장은 "매출이 절반으로 줄고 부도 소문이 꼬리를 물어 운영자금도 꿀 수 없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겨우 두 달이나 밀려 있던 직원 월급을 줬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직원의 절반(400여 명)을 줄였고 직접 자가용을 몰며 자금줄을 찾아다녔다. 운전기사도 내보냈다. 어렵사리 미국계 투자회사인 로스차일드에서 499억원을 빌렸다. 그 돈이 금호전기의 구명줄이 됐다. 금호전기는 이 돈으로 LCD 디스플레이 부품을 개발해 삼성과 LG 등에 납품했고 차츰 회사도 안정을 되찾았다. 2000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로스차일드에서 빌린 돈은 상환 약속 기간보다 1년 이르게 2002년에 모두 갚았다. 지난해엔 창사 이래 최대인 18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박 사장은 "회사를 되살리면서 변하지 않으면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창립 70년을 맞아 '100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첫 장은 '연구개발(R&D)'이다. 박 사장은 "R&D 투자를 매출의 10%로 늘리고 종업원의 10%를 연구인력으로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 박명구 사장=전자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다. 대학재학 시절 창고 하나를 빌려 '금파전자연구소'란 간판을 내걸고 택시미터기 등을 개발했고 80년 스위스 국제발명전에 형광등용 안전기를 내놔 금상을 받았다. 86년 전자공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박 사장의 사촌형이다. 금호전기는 84년 금호그룹에서 독립했다. 금호전기의 국내 전구시장 점유율은 35%로 다국적 조명기기업체인 오스람과 선두를 다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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