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쓰고 방송 … 이집트 50년 만에 첫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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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2일(현지시간) 이집트 국영TV 채널1이 사상 처음으로 히잡을 쓴 여성 앵커(오른쪽 사진)를 출연시켰다. 지난 50년간 서양식 복장을 한 앵커(왼쪽 사진)가 뉴스를 진행해 왔다. [사진 채널1 웹사이트]

이집트 국영방송 사상 처음으로 히잡(머리 쓰개)을 쓴 여성 앵커가 등장했다. 이집트 국영TV 채널1의 여성 앵커 파트마 나빌은 2일(현지시간) 검은 정장에 크림색 히잡을 쓰고 나와 12시 뉴스를 진행했다. 이집트 여성 대다수가 히잡을 착용하지만 세속주의 성향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등 과거 정권은 약 50년간 국영방송사 여성 직원이 히잡을 쓴 채로 TV에 출연하는 것을 금지해 왔다. 그동안 민영방송에서는 국영방송과 달리 앵커의 신념에 따라 히잡 착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무슬림 여성으로서 선택권을 되찾은 나빌은 언론 인터뷰에서 “마침내 이집트 언론에도 혁명의 영향이 미쳤다”며 역사적 순간을 장식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2002년부터 5년간 국영TV에서 일할 당시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히잡 벗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앵커에 선발되지 못했다.

 국영 MENA통신에 따르면 살라 압델 마스쿠드 정보장관은 전날 “정의의 원칙을 강화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이제 히잡 착용 여부는 개인적 선택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집트 여성의 70%가 히잡을 착용하는데 히잡을 쓴 여성의 TV 출연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측근인 마스쿠드 장관이 임명된 지 한 달 만에 파격 이슬람화(化)를 선보이는 것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애초 국영TV 진행자들이 수잔 무바라크를 비롯한 전 대통령 부인들의 영국식 패션스타일에 맞춰 왔던 것처럼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르시 대통령의 입맛에 맞게 변화되는 것뿐이란 지적이다. 일각에선 모든 무슬림 여성에게 머리 쓰개 착용을 강요하는 분위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 대통령 부인인 나글라 알리 마무드는 노동자 계층의 상징인 무릎까지 내려오는 키마르를 주로 착용한다.

 실제로 최근 관영 언론에 임명된 에디터 50명 중 대부분이 이슬람주의자이고 반이슬람주의자에 대한 검열이 이뤄지는 등 언론통제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미디어 전문가 파리다 엘샤우바시는 “누가 대통령이 됐든 간에 관영 언론이 대통령 떠받들기를 그만두고 진실을 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주문했다.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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