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 잊으려다" 성폭행 당한女 뇌에 피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은 일반 여성에 비해 뇌혈관에서 피가 잘 돌지 않고 에너지로 쓰는 당 대사도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에서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혈류량이 떨어진 부위, ㉯사진의 파란색 부분은 당 대사가 저하된 부위를 나타낸다. ㉯에서 녹색 표시는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거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각성상태가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연합뉴스]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은 뇌의 피가 잘 안 돌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영실(핵의학과) 아주대병원 교수팀은 3일 국내에서 성폭행을 당한 19~51세 여성 12명의 뇌 영상과 피해 경험이 없는 여성 15명의 뇌 영상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같이 분석됐다고 밝혔다. 성폭행 피해 여성들에게서 뇌 기능 이상이 검증된 것은 처음이다. 안 교수는 “성폭행 여성들은 두려움과 공포심을 관장하는 해마 부위의 뇌 혈류량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나쁜 기억을 억누르거나 잊으려고 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여성들의 뇌 영상을 볼 수 있는 ‘단일광자단층촬영(SPECT)’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을 한 뒤 뇌영상분석프로그램(SPM2)으로 뇌 혈류량과 당(糖) 대사를 비교 관찰했다.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검사 당시 성폭행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지 평균 9개월이 지났었다.

 검사 결과 피해 여성들은 뇌의 왼쪽 해마와 기저핵 부분에서 뇌 혈류가 정상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한 모습을 띠었다. 연구팀은 피해 여성들이 성폭행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데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신경생리학적 증상 때문에 뇌 혈류량과 당 대사 기능이 떨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정신의학연구(Psychiatry Research:Neuroimaging) 최근호에 발표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