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애플 비판 … WP “삼성이 이기는 게 IT 혁신에 도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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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미국 내 특허 소송전에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휴대전화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를 추가했다.

 애플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삼성전자의 갤럭시S3·갤럭시노트와 태블릿PC인 갤럭시노트 10.1이 자신의 사용환경(UI) 특허를 침해했다고 제소했다. 이번 제소는 애플이 지난 2월 갤럭시S2를 상대로 낸 UI특허 침해 소송의 소장(訴狀)을 변경해 대상 기기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난달 24일 이 법원 배심원들이 삼성전자의 갤럭시S가 애플의 디자인 특허와 UI 특허를 침해했다고 평결한 것과는 별개의 사안이다.

 애플이 내세운 UI 특허는 ▶e-메일 등에서 전화번호·메일 주소를 탐지해 터치 한 번으로 전화를 걸거나 메일을 발송해 주는 기술 ▶부재 중 통화 관리 기술 ▶화면을 밀어서 잠금 해제하는 기술 등 여덟 가지다.

 애플은 이번에는 디자인 특허를 주장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 신제품 디자인은 아이폰과 다르다는 것을 애플이 자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갤럭시S3는 모서리의 둥근 정도가 아이폰과 확연히 다르고 갤럭시노트는 크기부터 다르다. 두 제품은 출시 당시 애플의 디자인 특허 시비를 비껴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애플이 갤럭시S3 등을 제소한 것은 이달 아이폰 5 출시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관측이 많다. 아이폰5의 강력한 경쟁 상대인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 10.1의 제품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갤럭시S3는 출시 50일 만에 전 세계에서 1000만 대가 팔렸고, 올 초 나온 갤럭시노트 또한 올해 안으로 글로벌 판매가 10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애플의 이번 제소에 대해 “제품 대 제품의 경쟁이 아니라 소송을 통해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려는 것은 유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주력 제품이 소송을 당했지만 삼성전자가 바짝 긴장하고 있지는 않다. 판결이 2014년에나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매년 신제품이 나오는 휴대전화 시장 특성상, 판결이 나올 때쯤에는 두 제품 모두 후속 모델이 출시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판결이 시장에 주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또 UI는 우회 기술 적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삼성은 이미 애플이 걸었던 ‘바운스백’(화면을 넘길 때 맨 마지막에 이르면 뒤로 튕기는 것) 특허를 다른 기술로 피해 갔다. 다만 애플이 승소할 경우 삼성이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 10.1 판매에 따른 이익의 일부를 배상금으로 내놓아야 할 가능성은 있다.

 애플의 잇따른 소송을 놓고 미국을 포함한 해외 언론들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31일자에 "애플이 삼성전자에 져야 IT업계 혁신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의 전문가 칼럼을 실었다. 경영 이론 전문가 비벡 와드화는 칼럼을 통해 "근래 애플의 행태는 IT 혁신을 방해한다”며 "항소심에서는 삼성이 이기는 것이 애플을 위해서도 더 나은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마이클 울프는 지난달 28일 “소송과 특허전쟁에 시간을 소비하는 기업들을 보면 대부분 쇠락해가는 공룡들”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법정 소송에 매달리던 기업들이 시장에서 밀려난 사례가 적지 않다. 한때 휴대전화 제조 분야의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는 2009년 10월과 12월 애플이 자사의 기술특허를 침해했다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2년여 공방 끝에 승소했으나 시장 주도권은 삼성전자와 애플에 빼앗겼다. 1976년 즉석카메라 업체인 폴라로이드는 세계 최대 필름업체 이스트먼코닥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무려 16년간 이어진 소송에서 폴라로이드는 8억7300만 달러(약 9900억원)라는 배상액을 받아내며 승리했지만 이후 혁신에 성공하지 못해 파산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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