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산업은 유틸리티 산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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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호 30면

엽기 코믹 노래 ‘강남스타일’이 태평양 건너까지 히트를 치고 가수 싸이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를 춤추게 했다. 이렇듯 한국은 역동성이 살아 있는 국가다.
우리 경제 역시 역동성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한국은 풍부한 천연자원의 혜택을 본 국가가 아니다. 한국인은 국경을 넘어 팔릴 수 있는 상품을 새로 개발하고, 그 상품을 팔기 위해 전 세계를 누볐다. 오지에서 도로를 건설하고 중동의 땡볕 아래 송유관을 연결했다.

그러나 왜 한국의 금융업에서는 이러한 혁신과 글로벌 챔피언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외환위기의 교훈을 통해 국내 은행들은 견실한 수준의 안정성 지표(부실채권, BIS 비율 등)를 보였으며, 최근의 금융위기 속에서도 미국 및 유럽의 많은 은행에 비해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피할 수 있었다. 기초체력도 있고, 그렇다고 국내 은행들의 전략적 목표가 낮은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국내 은행은 ‘글로벌 또는 아시아 은행 톱 순위 안에 진출하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은행들의 세계 랭킹은 아직 70위권 밖이다. 더불어 한국은 1990년대 말부터 아시아 금융허브를 꿈 꾸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은행 중에 아시아 본부를 한국에 둔 은행이 단 한 군데도 없는 변방이다.

그렇다면 국민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근 맥킨지가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금융권의 경쟁력에 대해 매우 낮게 평가했다. 조사한 16개 산업군 중 ‘세계 시장에서도 1, 2위를 다툴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한 사람의 비율은 은행업의 경우 5.8%로 꼴찌에서 둘째였다. 이처럼 경쟁력이 낮은 걸 알지만 45.5%는 다양한 금융상품과 서비스에 제약이 있더라도 국가의 적극적 보호 아래 은행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방향을 선호한다고 응답했으며 88.4%가 은행의 수익이 희생되더라도 사회적 책임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했다. 은행권의 공익적인 측면에 무게를 둔 사회적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안정성과 공익성이 지나치게 강조돼 은행의 해외 진출이나 인수합병(M&A) 시도, 상품 및 서비스의 혁신이 위험 요인으로만 평가돼선 안된다. 해외 진출이나 신사업 시도에 있어 조그만 ‘실패’도 용납되지 않고 은행 최고경영층의 빈번한 교체가 반복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일관된 전략수행과 혁신이 이루어지기는 매우 어렵다.

지금의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 은행업은 수도·전기와 같은 공공재로 여겨지며 유틸리티 산업의 길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길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국내의 소매고객 및 기업들의 국내 산업과 관련된 수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틸리티 산업의 길을 간다면 국내에서 안정성을 얻는 대신 고객들은 다양하고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의 제약을 감수하거나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화가 더욱 확대됨에 따라 필요로 하는 글로벌 금융 서비스를 해외 은행에 의존하는 반대급부가 따를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자국 은행을 키운다는 전략하에 그 작업을 치밀하게 진행 중이다. 실제로 해외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에서 거대한 중국 은행을 통한 파이낸싱 조건을 내건 중국 건설사들의 약진을 볼 수 있다. 중국은 상하이를 금융 허브로 키워가고 있으며, 글로벌 10대 은행에 중국 은행이 네 개나 포함돼 이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해외 은행의 지분 인수나 M&A 또한 활발하다. 은행의 국내외 M&A 이야기가 나오면 “Too big to fail”을 이야기하며 대형화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지만 글로벌 그리고 아시아 내에서조차 국내 은행의 규모를 볼 때 오히려 “Too small to succeed”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맥킨지의 설문조사에서 보수적인 소비자들도 85%가 은행 선진화를 위해 보다 공격적인 해외 진출이 필요하다고 했다. 선진화를 원한다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안정성을 뒷전으로 하고 무조건 공격적인 혁신을 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국내 은행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때로는 실패도 하는 역동적인 혁신에 대해서도 박수를 보내고 장려하는 환경도 조성돼야 우리나라 은행들의 균형 있는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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