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현장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 움직임

중앙일보

입력

최근 낮은 임금과 불공정한 계약 관행 등 국내영화 현장 스태프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영화계 행보가 분주해지고 있다.

영화인회의는 '제작 환경 및 근로조건 개선위원회'를 출범시켰는가 하면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영화진흥위원회 등 영화단체들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스태프들의 처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져나온 것은 충무로 스태프들의 인터넷모임인 '비둘기둥지'가 발족하면서부터. '공정한 영화 환경을 만들어 보자'며 몇몇 뜻있는 사람들끼리 지난 3월 중순 개설한 이 인터넷 카페에는 한달 반 동안 연출부, 촬영부, 조명부, 제작부 등 현장 스태프들과 영화학도 등 8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들 중 몇몇은 지난 달 열린대종상 시상식때 '40억 영화에 연봉은 200만원' '제작자=반칙왕' '표준계약제 실시하라'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이들이 거리까지 나서게 된 데는 한국 영화의 열악한 제작 환경때문이다.

40억-50억원이 넘는 대형 영화가 속속 제작되고, 한 작품에 600만명이 넘는 관객이 몰리는 등 한국 영화계의 파이는 커졌지만 스태프들의 임금은 아직까지 최하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

영화「순애보」의 연출부였던 A씨는 "보통 영화를 만들 때 조감독과 연출부 3-4명이 함께 영화사와 계약을 한다. 편당 약 2천만원씩을 받는데 조감독이 이 중 반을가져가고 나머지 3-4명이 남은 1천만원 중 경력, 경험 등을 고려해 다시 나눈다. 연출부 막내일 경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받는 돈은 200만-300만원만에 불과하다"고말했다.

영화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는 촬영기간 6개월, 준비기간 2개월, 후반작업 2개월등을 포함해 약 1년 정도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경험이 적은 스태프의 연봉은 불과 200만-300만 원이란 얘기다. 참고로 우리 나라 근로자들의 월 평균 임금은 약 121만원이다.

특히 계약서에는 정확한 계약 기간이나 연장 근무 등이 구체적으로 나와있지않기 때문에 한 번 계약을 맺은 스태프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1년이고 2년이고 영화한 편에만 매달려야 한다. A씨는 "중간에 너무 힘들어 그만두게 돼도 돈 한 푼 못받고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털어놨다.

촬영 감독 B씨는 "스태프들은 프리랜서이기때문에 고용보험, 상해보험 등은 생각할 수 도 없으며, 계약금도 한 번에 주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 2-3번에 걸쳐 나눠주기때문에 십 몇 년씩 영화판에 있어도 돈을 모을 길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 그동안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었던 이유는 영화계 내에 영화를 '노동'이라기보단 `문화행위'로 보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은 '영화는 배고픈 예술이다' '너희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로 이들을 달래왔고, 충무로에는 `돈을 안 받아도 좋으니 일만할 수 있게 해달라'는 `영화광'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최근 영화가 '돈이 되는' 산업으로 바뀌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영화가 흥행할 경우 주연 배우나 감독, 제작자들은 `돈방석'에 오르지만 스태프들의 열악한 근로 조건에는 변함이 없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스태프들이 본격적으로 이를 문제 삼고 나선 것.

'비둘기둥지'의 회원이자「강원도의 힘」「파이란」등의 촬영감독인 김영철(35)씨는 "제작자들은 스태프들에게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기본적으로 일을 오래 할 수없는 근로 조건에서 어떻게 전문성을 키울 수 있겠느냐"며 "계약 기간과 연장근무에관한 조항 등을 명시한 표준계약서 도입과 고용보험과 상해보험의 즉각 실시, 최저생계비 보장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제작 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영화인회의는 최근 '제작환경및 근로조건 개선위원회'를 발족하고, 이현승 감독을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이감독은 "영화계의 근로 조건은 단순히 임금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도제 시스템 위주로 돼있는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면서 "스태프들의 근로 조건을 향상시키면서도 제작의 질 저하를 가져오지 않는 한국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영화인회의는 우선 회원 600여명을 대상으로 1차 실태 조사에 들어갔으며, 공청회 등을 마련해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또 한국영화제작가협회도 영화진흥위원회에 국제적인 계약 사례 연구 등을 문의해 놓은 상태이며 제작자, 투자자, 감독, 스태프 등 영화인들이 함께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간담회를 준비 중이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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