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보기] 김성근 감독의 '근성 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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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들이 가장 싫어하는 감독은 누구일까.

16일 LG 감독대행이 된 김성근 감독이다. 심판들은 경기 때마다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해 오는 김감독을 싫어한다. 다른 감독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일도 김감독은 꼭 걸고 넘어진다. 경기를 이기고 있을 때는 강도가 약하지만 잘 풀리지 않는 날엔 엄청난 시련을 각오해야 한다.

최근들어 김감독의 항의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일화는 글러브 상표를 둘러싼 시비였다. 어느날 김감독은 주심에게 다가가 상대팀 투수의 글러브에 부착된 흰색 상표(아마 롤링스였을 것이다)가 타격에 방해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호투하고 있던 상대 투수는 이제껏 아무도 그런 문제로 이의를 제기한 바가 없었고 그동안 8개 구단 선수들 모두가 그런 글러브를 사용해 왔던 터라 어이없어 했다. 경험이 많지 않았던 주심도 확실하게 룰을 알고 있지 못한 터라 당황해 했고-. 그러나 김감독은 항의를 그치지 않았고 마침내 룰북을 확인한 결과 김감독의 주장이 맞는 것으로 판명됐다. 이렇게 되자 주심은 글러브를 교체하거나 흰색이 눈에 띄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명했다. 이 때문에 상대팀은 경기 도중 볼펜으로 글러브에 붙어 있는 상표에 덧칠하느라 법석을 떨어야 했고 그동안 어깨가 식어 버린 상대 투수는 갑자기 난조를 보이며 무너지고 말았다.

그날 이후 그 주심은 김성근 감독만 보면 왠지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김감독은 심판들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니 그들의 스승인 셈이다.

김감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심판뿐이 아니다. 구단 간부들도 그를 싫어한다. 요구가 끊이지 않는 데다 사사건건 구단에 대드니 좋아할 리 없다. 그러나 김감독의 요구나 반발은 사적인 경우가 없다. 거의 대부분 선수단 훈련이나 복지문제 같은 공적인 일 때문이다. 구단측은 깐깐하게 따지고 드는 김감독이 성가시기는 해도 훈련이나 경기에는 열심이니 어쩌지 못한다.

선수들도 김감독을 좋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성격이 무뚝뚝한 데다 선수들이 녹초가 될 때까지 훈련을 시키는 훈련 지상주의자이니 좋아할 리가 없다. 김감독은 훈련을 많이 해야 안심하는 스타일이다. 일본에서 야구를 배운 감독들의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김감독은 선수 개인의 능력보다 훈련을 믿는 감독이다. 이같은 성향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명감독이란 칭송을 듣기도 했다. 고교 감독이나 약체인 태평양 감독 시절 무명 선수들을 이끌고 상위권을 차지해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스타들이 많은 팀에서는 지나친 훈련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명성이 퇴색하는 불운도 겪었다.

LG 감독대행으로 다시 그라운드에 선 김감독이 난파된 LG호를 어디로 끌고갈지 지금으로선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LG가 호락호락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최고의 투수 조련사인 김감독이 무너진 LG 마운드를 어떻게 재건해 나갈지 또다른 흥미거리다. 심판들에겐 비상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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