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터졌다, 기발함 가득한 정약용의 가사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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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열린 다산음악회에서 진주검무를 추고 있는 김태연 진주검무보존회장. [사진 다산연구소]

“모기야 모기야 얄미운 모기야/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밤으로 다니는 것 도둑 배우는 일이요/제가 무슨 현자라고 혈식(血食)을 한단 말가.”

 서울시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인 유창씨와 제자들이 함께 부른 노래가 끝나자 함성과 함께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선생이 한 여름 밤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지은 시 ‘증문(憎蚊·얄미운 모기)’을 서민들이 즐기던 국악의 한 장르인 경기잡가로 선보인 무대였다.

 24일 오후 서울 남산 한옥마을 국악당에서 열린 ‘제3회 다산음악회’는 일반인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던 다산 선생의 한시(漢詩)가 음악의 옷을 입고 관객들과 친근하게 만나는 무대였다. 객석을 꽉 메운 300여 관객들은 이 기발하면서도 유쾌한 무대에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다산연구소 김세종 연구실장에 의해 한글로 옮겨진 다산의 시를 노래로 들으며, 그 재치 있는 표현에 공연 도중 큭큭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세종 실장

 이날 음악회는 다산 탄생 250주년과 유네스코 2012년 세계문화인물 선정을 기념해 열렸다. 다산의 다양한 시가가 시조와 송서(誦書·소리를 내어 읽음), 잡가, 판소리 등 다양한 국악의 장르와 만났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0호 대금정악 보유자인 조창훈 선생의 청아한 대금 독주로 시작한 공연은 경기시조보존회장인 변진심 선생의 시조 ‘샘위에’와 ‘사람이’로 이어졌다. 시조는 흔히 고전문학의 한 종류로 알려져 있지만, 반주 없이 일정한 가락을 붙여 부르는 음악의 한 장르이기도 했다.

 이어 유창 선생의 송서 ‘애절양(哀絶陽)’과 잡가(雜歌) ‘증문’ 공연이 무대를 달궜다. 송서와 잡가는 시조에 비해 음이 변화무쌍하고 활기차 객석을 들썩이게 했다. 이어 안개 낀 양수리의 풍경이 화면에 펼쳐지는 가운데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인 김태희 명창이 판소리 ‘마재풍경가’를 선보였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진주검무였다. 다산은 17세에 진주검무 공연을 보고 ‘무검편증미인(舞劒篇贈美人·칼춤 시를 지어 미인에게 주다)’이라는 시를 지었다. 무대에 오른 무희 두 명이 양손에 든 칼을 찰랑찰랑 흔들며 정갈하면서도 힘 있는 춤사위를 보여줬다. ‘한 칼은 땅에 두고 한 칼로 휘두르니/푸른 뱀이 백 번이나 가슴을 휘감는 듯’이라는 다산의 시가 무대 위에 그대로 재현됐다.

 2부에서 선보인 국악 오케스트라의 ‘시경(詩經)’ 연주도 신선했다. 경전으로만 알고 있는 시경이 가야금과 아쟁·장구 등의 국악기와 신디사이저·심벌즈 등의 서양악기가 함께한 현대적인 노래로 새롭게 태어났다.

 사회를 맡은 최종민 동국대 겸임교수는 “유교국가였던 조선은 음악이 넘쳐나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여겼다”며 “오늘 무대는 다산 선생이 강조하던 음악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고 평했다. 이날 공연에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정해창 다산학술문화재단 이사장,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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