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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한국, 치밀한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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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상언
런던 특파원

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 현장에 있었다. 한국이 일본을 2대0으로 이긴,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로 10여 일이 지난 아직까지도 논란이 분분한 바로 그 ‘역사적’ 장소 카디프 밀레니엄 구장에. 골이 터진 두 차례의 순간,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관찰해야 하는 기자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다가 민망해서 조용히 주위를 살펴보고 얼른 앉았다.

 기자석은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경기장 중앙 쪽의 관중석 하단 중심부에 있었다. VIP석 바로 맞은편. 그런데 이 기자석 바로 옆에 150명가량의 일본인이 떼로 몰려 앉아 아주 시끌벅적하게 응원을 했다. ‘닛폰, 닛폰’을 쉴새 없이 외치고, 요란하게 나팔을 불어댔다. 사무라이 복장을 한 일본인도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명당 자리에 단체로 앉을 수 있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상당히 조직적으로 준비하지 않고서야 집단적으로 그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일본이 3~4위 전을 치르는 것이 확정되기 한참 전에 일치감치 표를 예매했어야 했고, 인터넷이 아닌 현장 구매로 일사불란하게 일련번호로 표를 샀어야 했다.

 반면에 한국 응원단은 관중석 여기저기에 산재돼 집단 응원에 애를 먹었다. 대부분 좋은 자리도 아니었다. 브라질과의 준결승전 패배 이후 급하게 개별적으로 표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응원 목소리에서 한국이 밀리지는 않았고, 시합도 시원하게 이겼지만 일본인의 치밀한 준비는 인상적이었다.

 간간이 취재 현장에서도 일본 기자들의 세심한 준비에 놀랄 때가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보면 뭔가 잔뜩 적어 오는 경우가 많다. 물어보면 회사 간부와 사전 협의를 거쳐 질문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회견 내용과 질문 방향이 어긋나 생뚱맞은 분위기를 연출해도 답답해 보일 정도로 가져온 질문을 고집한다.

 이런 일본인에 비해 축구 응원단과 기자를 포함해 한국인들은 즉흥적이다. 좋게 말해 다이내믹하고 융통성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치밀함에 약점이 있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도 다소 즉흥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의 한국 공무원들에 따르면 대통령은 올림픽 축구 준결승전이 열린 7일(현지시간)에 영국을 방문해 경기를 관람할 계획을 추진했다. 이후 결승전이나 3~4위전까지도 참관하는 것이 검토됐다고 한다. 이는 10일의 독도 행차가, 장시간 대통령의 심중에 있었던 일이었다 하더라도 D-데이를 포함한 실행계획이 확정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박종우 선수의 세리머니 사건 뒤 어설픈 입장 표명과 사과로 논란을 부른 대한체육회나 축구협회의 대응도 한국의 성격을 드러낸다. 서두르다 정확한 의사 표현의 절차나 방법을 점검하지 못했다.

 올림픽에서는 한국의 과감한 축구가 일본의 꼼꼼한 축구를 눌렀다. 하지만 국가 간 분쟁이나 외교에서는 의욕이 정교함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