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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논술 고통, 대학이 풀어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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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윤석만
사회1부 기자

“대학의 편의주의가 너무 심해요. 어려워야 학교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고 채점 편하게 문제를 내거든요.”

 대입논술의 문제점을 지적한 본지 기획 시리즈(8월 20일자 1, 4, 5면, 21·22일자 1, 8면)를 읽은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기자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그는 “논술을 10년 가까이 담당했는데 돌이켜 보니 수험생의 고통을 감안하지 않고 공급자 위주로 출제·채점해 왔던 것 같다”고 했다. 고교 수준의 용어와 표현을 제시하고 논리력과 사고력을 평가해야 하는데 출제·채점 일정에 맞추다 보니 뭔가 꼬였던 것 같다는 얘기였다. “30년 가까이 수학만 가르친 나도 못 풀겠다”(최수일 전 세종과학고 교사)거나 “교수인 나도 지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최혜실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교사와 교수들의 지적도 타당하다고 했다.

 대학은 대학수학 문제를 내놓고는 “교과서 개념만 알면 충분히 푼다”, 비문(非文)이 많은 지문엔 “글이 낯설어 어렵게 느껴질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런 대학들의 인식은 입시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에 너무 둔감한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수험생들은 요즘 대입을 ‘죽음의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 서울 강남 A고 3학년 이모(18)양은 “수능과 내신, 스펙(입학사정관제)에 논술까지 준비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다”며 “입학사정관제라도 없던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부러울 정도”라고 했다. 이양은 “학교에선 논술을 대비하기 어려워 학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제발 지문이 쉽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과 수험생들은 특히 대학수학을 배우고, 대학원생들이나 알 법한 서적의 내용과 개념들을 외워야 한다. 논술전형 모집정원이 1만5000여 명, 최고 경쟁률이 150대 1까지 치솟는 현실을 감안하면 수많은 수험생이 ‘논술의 늪’에 빠져 있는 셈이다.

 수시모집이 시작되면서 서울 7개 대학이 고교 수준의 논술 문제 출제에 합의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논술 개선방안을 발표한 다음 날인 22일에도 20여 개 대학 입학처장이 모여 논술 등 입시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7곳뿐 아니라 다른 대학들도 고교 수준의 논술 문제 출제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고3 엄마 최현주(48)씨는 “대학이 개선한다고 했지만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불안하다”고 했다. 2008학년도에 대입 자율화를 위해 논술 가이드라인이 폐지될 때 대학들은 “국·영·수 중심의 지필고사를 치르지 않겠다” “양심을 믿어 달라”고 호언했었다. 하지만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논술 문제가 계속 어려워지더니 사실상 본고사로 변질됐다. 다음 달부터 대학별로 논술고사가 치러진다. 과연 대학이 수험생의 논술 고통을 덜어주는 노력을 할지 전국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주시하고 있다.

윤석만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