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비율 높다고 집값 올라?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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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서울·수도권 주택시장 침체가 계속되면서 집값은 떨어지는데 전셋값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르는 곳이 많다. 자연스럽게 집값에서 전셋값이 차지하는 비율인 ‘전세비율’은 꾸준히 오르기 마련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전세비율은 각각 52.4%, 54.1%로 2003년 하반기 이후 가장 높다.

주목할 점은 개별 아파트 별로 서울·수도권에서도 전세비율이 70% 이상인 곳이 꽤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전세비율이 뛰는 것은 집값 상승의 신호로 여겨진다. 전셋값에 돈을 조금 더 보태면 집을 살 수 있으니 매매 수요가 늘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론 전세보증금이 위험하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집주인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자칫 경매로 넘어가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기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이런 판단은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세비율 상승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와 진실을 풀어본다.

전세비율 높은 아파트는 집값 뛴다? “아니다!”

기본적으로 전세비율이 높은 아파트에 매수세가 생길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전셋값이 매맷값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으면 ‘차라리 그냥 사자’로 돌아서는 주택 구입 수요가 생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도권 전세비율이 60% 이상을 나타냈던 2000년 2월부터 2002년 9월 사이에 이러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이 기간 수도권 집값은 39%나 올랐다.

60% 이상 전세비율을 기록한 초기 1년간(2000년2월~2001년2월)은 1.6% 오르는 데 그쳤으나 그 이후 폭등했다. 집값이 폭등했던 2001년 9월엔 전세비율이 67.7%까지 뛰었다.

그 이후 서울·수도권은 전세비율이 60% 이상이면 본격적으로 집값이 뛴다는 속설이 널리 인정받았다.

그런데 전세비율이 올라간다고 집값이 반드시 뛰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전국에서 전세비율이 가장 높은 광주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광주 아파트 전세비율은 2001년 2월 이후 변함없이 70% 이상을 유지해왔다. 올 들어 상승세가 더 가팔러 지난 7월 77%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이렇게 전세비율이 높은 광주 아파트값은 많이 올랐을까. 2001년 2월부터 지난달까지 11년 5개월동안 77% 오르는데 그쳤다. 전국 평균(119.7%)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사실 지방은 전세비율이 70% 이상인 곳이 흔하다.

지난달 기준 경북(74.2%), 대구(72.75), 울산(72.3%), 전북(71.2%), 전남(70.8%) 등이 모두 전세비율이 평균 70% 이상이었다. 대부분 짧으면 2~3년, 길면 5년 이상 높은 전세비율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들 지역 집값 변동률을 서울 수도권이나 전국 평균과 비교하면 그다지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전세비율이 높다는 게 집값 상승으로 바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서울·수도권 전세비율 70% 아파트 10만가구 넘어

최근 주목할 점은 서울·수도권에도 전세비율이 70% 이상인 곳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지역에선 지금까지 매맷값 상승폭을 전셋값이 따라가지 못해 전세비율이 낮게 유지되는 게 특징이었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전세를 끼고 집을 산 투자수요가 많아 평균 50%의 낮은 전세비율을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엔 이곳에서도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매맷값은 떨어지고 전셋값이 뛰면서 전세비율이 70% 수준까지 오른 아파트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에 따르면 서울·수도권에서 전세비율이 70% 이상인 아파트(주상복합 포함)는 258개 단지 10만2582가구나 된다. 이들 아파트는 대부분 전셋값에 몇천만원만 보태면 집을 살 수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4가 한강서초 83㎡형(이하 공급면적)이 대표적. 1~2년 전만해도 3억5000만원까지 거래되던 이 아파트는 현재 2억9000만원에 급매물이 나온다. 그런데 이 아파트 전셋값은 2억3000만원이나 된다. 매맷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79%나 되는 셈이다.

인근 H공인 관계자는 “큰 비용 차이가 아니니 매매가 어떠냐고 권하면 집값이 오르지 않을 텐데 그냥 조금 더 싼 전세에 살겠다는 전세입자가 많다”며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없기 때문에 매매와 전세의 금액차이가 적어도 굳이 집을 사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동산부테크연구소 김부성 소장은 “실수요자가 많이 찾는 수도권의 중소형 주택일수록 전세비율이 높아지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비율 높은 집 불안하다? “글쎄”

전문가들은 ‘전세비율 높은 집=전세보증금 불안’ 공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주택시장이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되면 전세비율 상승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세비율이 수년간 높게 유지돼 온 광주, 울산 등에서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더 많이 떼였다는 증거는 없다.

그보단 지난 2007년 전후 무리한 대출로 집을 사 전세를 준 수도권 아파트가 최근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해 문제가 되는 것일 뿐이다.

나비에셋 곽창석 사장은 “집주인이 경제 사정이 나쁘지 않아도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사라지면 전셋값을 올리려는 경향이 강해 전세비율은 계속 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지역에서는 월세 비중이 늘어난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우면 집주인이 전셋값을 올리거나 임대수익을 위해 월세로 바꾼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전세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광주는 2011년 기준 임대차 분포에서 월세비율이 72.4%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전세비율 상승은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서울·수도권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될 것”이라며 “그 자체만으로 보증금이 떼일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 주택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전세비율(매매가 대비 전셋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아파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세비율이 높아지면 전셋값에 부담을 느낀 세입자들이 매매수요로 돌아서 집값도 덩달아 뛴다는데 최근에는 그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사진은 수도권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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