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르네상스를” 인문학에 길을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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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인문학’이라는 거울 앞에 섰다. 기업 이익에 일생을 바친 한국 중년 남성들이 그 앞에서 고백한다. “지난 30년간 신제품, 매출과 점유율 같은 숫자에만 매달려 왔다.”(최창수 삼성SNS 대표) “회사의 비전과 목표는 있는데 나의 비전과 목표는 무엇이냐고 조직 구성원들이 묻는다.”(허영호 전 LG이노텍 대표이사)

 사회의 판결자 역할을 해온 법조인들의 성찰도 절절하다. “늘 죄지은 자의 간계함과 음습함을 대하며 살면서 나도 모르게 냉정하고 메말라졌다.”(박용석 전 대검 차장) “내가 내리는 판단의 오류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간다.”(김동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이들은 지난해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AFP)을 마치며 제출한 논문 ‘나와 인문학’에 이같이 적었다. 4개월간 데카르트(사진 왼쪽)·한용운(가운데)·마키아벨리(오른쪽) 등 문학·철학·역사 강의를 들은 후 나온 자기 발견이다. 60대의 한 중견기업 대표는 "내 남은 삶에도 르네상스가 시작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려 한다”며 피렌체로 예정에 없던 여행을 떠났다. 세계경영연구원(IGM)에서 경영인·공직자 대상의‘르네상스 시대와 창조 경영’ 강의를 들은 후였다.

 인문학 공부에 빠진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20~30대 직장인 은 동유럽 철학자의 강연에, 중년 주부는 박물관의 역사 수업에 몰려든다. 선진국을 맹렬히 좇는 ‘추격자’로 살아온 우리 사회가 인문학이라는 쉼표를 만나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 있다. ▶관계기사 보기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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