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회장 재계 '개혁 피로감' 대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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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朴容晟)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집권 후반기를 맞아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기존의 개혁과제를 잘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고 강조한 것은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재계의 피로감을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朴회장은 5만여 회원사의 국내 최대 경제단체장으로서 그동안 업계 애로를 수렴해 정부에 개선을 촉구해 왔다.

朴회장은 현 정부가 1997년 환란(換亂) 이후 4대 부문 개혁과제를 추진하면서 기업 부문의 경우 사외이사제도 도입과 회계제도 개선, 과감한 시장.투자개방 조치 등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며, 기업들에 투명경영이나 공정경쟁의 필요성과 위기의식을 충분히 심어줬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집권 후반기라는 시기적 특성이나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의 여건변화를 감안, 이제는 새로운 판을 더 벌이기보다는 마무리에 주력하자는 재계의 분위기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朴회장은 예컨대 집단소송제.집중투표제.서면투표제처럼 경영권 위축의 대가로 소액주주 권익을 신장하는 급진적 개혁조치들이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보장하는 전용펀드 허용 등 정부가 추진 중인 새로운 제도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한상의의 이현석 이사는 "정부가 새로 도입하려는 기업.노사 관련 개혁정책들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선진국에서 부작용 때문에 거의 활용하지 않는 것들" 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선 현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를 '소액주주 운동을 넘어선 민(民)에 의한 자본의 통치' '민중의 힘으로 자본주의의 근간을 침해하는 체제 변혁' 으로 의심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자유기업원의 민병균 원장이 '시장경제와 그 적(敵)들' 이라는 e-메일 서신에서 제기한 이같은 시각에 공감하는 재계 인사들도 있다.

그러나 재계가 개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朴회장은 "기존 개혁과제 중에는 바람직한 것도 많으며, 정부가 집권 후반기를 맞아 이를 잘 마무리하도록 정치권과 언론이 잘 도와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홍승일 기자 hong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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