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정, 큰 선물 받아 … 지역 봉사로 갚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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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난다. 경제가 어려워서 혹은 교육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회 분위기가 불안정해서 등 갖가지 이유로 많은 이들이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 하지만 낯선 땅 ‘한국’이 좋아서 진정한 한국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외국인들도 있다.

10여 년간 아산에 거주하면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됐다”는 갈색 눈의 주부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나스타시아(한국명 김안나)도 이들 중 한 명이다. 아나스타시아는 지난 2002년 한국에 처음 왔다. 그리고 2007년 귀화해 이젠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국적을 바꾸는 귀화 시험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5년 이상 한국에서 거주한 주소가 있어야 하고, 자신의 자산 혹은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할 능력도 있어야 한다. 까다로운 필기시험과 면접도 거쳐야 한다.

갈색 눈의 주부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나스타시아는 마미폴 활동과 소외계층을 위한 자원봉사로 이웃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체조 선수 꿈 접고 한국으로

“제 대한민국 이름은 김안나 입니다. 한국이 좋아 귀화를 했고 사랑스러운 가족이 있어 행복합니다” 7일 오후 3시. 한국인 남편과 함께 운영중인 식당(아산 좌부동 소재)에서 만난 아나스타시아는 능숙한 한국어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아나스타시아의 원래 직업은 체조선수였다. 청소년기에는 구 소련 주니어 국가대표로 발탁된 유망주였다. “소련 연방이 1991년 해체되면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국적이 바뀌었어요. 나라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체조에 대한 지원은 없었죠. 소련은 세계적으로 체조가 강국이어서 아낌없는 지원이 이어졌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모든 꿈을 접고 평소 동경하던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체조를 하면서도 한국에 관심이 있어 틈틈이 한국어를 익힌 그는 꿈에 그리던 한국으로 온 뒤 아르바이트를 위해 찾아간 경기도 인천의 한 식당에서 운명의 남자 김철태 씨를 만난다. 그는 외로웠던 한국생활에서 자신을 따뜻한 손길로 감싸줬던 김씨와 3개월 초고속 열애 끝에 결혼했다. 김씨의 거주지인 아산에 보금자리를 틀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첫째 딸이 태어나자마자 심장 수술을 받고 이후 다섯 차례 더 대수술을 받았으며, 시어머니는 치매 판정을 받는 등의 아픔을 겪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아이의 생명이 위태로웠거든요. 요즘에도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병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자라준 우리 딸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죠.”

 소외계층 위해 꾸준히 자원봉사

그는 현재 아산 경찰서에서 시행중인 ‘마미폴’에 참여하고 있다. 마미폴은 한국생활에 능숙한 이주여성들이 경찰과 힘을 모아 지역 내 외국인들에게 한국 법률과 운전면허 취득 방법을 알려주는 단체다. “마미폴 교육을 통해 운전면허를 취득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다른 외국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마미폴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마미폴 활동 이외에도 지역 내 복지시설을 돌며 소외계층을 위해 꾸준히 자원봉사도 펼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해 미용봉사를 하는가 하면 환경보호를 위해 가족과 함께 거리에 나서 정화활동도 하고 있다. 봉사를 하면서 미용에 관심을 갖게 돼 지난해에는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한국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취득한 터라 의미도 남다르다.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정’이에요. 한국에는 서로 돕고 나누는 정이 있어요. 다른 나라에는 자원봉사라는 개념이 생소하거든요. 한국에서 ‘가족’과 ‘정’이라는 큰 선물을 받은 만큼 지역사회에 아낌없이 제 능력을 기부하고 싶어요.”

글·사진=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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