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대출금리의 비밀… 가산금리에 불신 쌓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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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호 24면

최고금리 인하됐어도 수혜자 적어
여론이 악화되자 국민·신한 등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 인하에 나섰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 중에 그 혜택을 봤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3%포인트를 내렸다고 내세우는 건 은행들이 최고금리를 물리던 일부 저신용자들 이야기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최고금리 대출자는 은행 전체 대출자의 2%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금리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 시중은행의 가장 큰 수익원인 대출금리는 은행만 아는 ‘블랙박스’에서 결정된다. 은행들은 영업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중은행의 예대 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은 평균 2.84%포인트다. 국민·신한·우리·하나 4대 은행의 지난해 순이익 7조5000억원 중 80%인 6조원가량이 예대 마진에서 나왔다.

그렇다고 저신용자들이 금리 인하를 크게 체감하는 것도 아니다. 약간 내렸다 하더라도 연 10%가 넘는 금리는 여전히 부담스러워서다. 이들은 은행에 저축은 못하면서 대출금 상환에 허덕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저축률은 1998년 21.6%에서 2010년 3.9%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가구의 9.9%가 소득의 40% 이상을 대출 원리금 갚는 데 쓰는 ‘한계 가구’로 집계됐다. 2010년의 7.8%보다 2.1%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귀에 걸면 귀고리’ 가산금리
중소 무역회사 백모(40) 해외영업팀장은 6년 전 빌린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연 6.5%의 CD 연동 변동금리 조건이었는데 지금도 거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는 CD금리가 대출 초기보다 1.5%포인트나 내려 대출금리도 그 정도 떨어질 거라 기대했다. 은행 지점에 따졌더니 “본사에서 책정하는 가산금리가 올랐다”는 짤막한 설명 이외에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백씨는 “CD금리가 하락한 데다 개인적으로는 연봉이 늘어 신용도가 나아졌을 텐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은행이 붙이는 가산금리에 비밀이 숨어 있다. 은행 대출금리는 CD·코픽스(은행자금조달비용지수) 같은 지표금리에 가산금리를 얹어 정한다. 가산금리는 은행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크게 신용위험도·업무비용·목표이익률과 지점장 전결금리 등의 항목으로 구성된다. 신용위험도는 대출자에게 돈을 빌려준 뒤 떼일 확률로,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커진다. 업무비용은 대출자 신용도 조사 등에 들어간 비용이다.

여기까지는 대다수의 전문가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제는 목표이익률과 전결금리다. 목표이익률은 은행들이 대출 상품에서 얻고자 하는 이익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은행들은 기준금리가 떨어져도 목표이익률을 올려 기존 대출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점장의 재량으로 2% 안팎의 범위에서 금리를 조정하는 전결금리도 금리를 높이는 수단으로 이용됐다고 한다. 특히 깎을 때는 급여이체·예금가입 등의 조건이 있지만 올릴 때는 별다른 규정이 없어 지점장의 주관대로 정할 가능성이 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은의 기준금리와 시중 CD금리가 모두 3%포인트 이상 하락했지만 은행 대출금리는 일반신용대출 기준으로 1.5%포인트밖에 내리지 않았다. 이를 통해 시중은행들이 최근 3년간 전결금리를 통해 얻은 수익이 총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감사원의 임승주 감사관은 “은행들이 필요에 따라 목표이익률과 전결금리를 고무줄처럼 늘렸다”고 말했다.

신용등급은 내릴 땐 급행, 오를 땐 완행
서울에 사는 차모(34)씨는 지난해 신용대출로 받은 2000만원의 이자를 기한보다 일주일 늦게 갚았다. 한 달 뒤 그는 모자라는 전세자금에 보태려고 추가 대출을 신청하러 은행 지점에 갔다가 거절당했다. 기존 신용대출 이자를 일주일 늦게 낸 탓에 신용등급이 6등급에서 7등급으로 1단계 강등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창구 직원의 설명이었다. 시중은행은 대부분 신용등급 6등급 이상에게만 대출해준다. 차 씨는 급전이 필요한지라 금리가 연 20%에 달하는 저축은행 대출을 받아야 했다.

신용등급은 대출금리 결정의 중요 요소다. 보통 신용평가회사(CB)의 신용등급과 은행 자체의 신용등급을 합산해 정한다. 문제는 비대칭성이다. 대출자가 닷새만 연체해도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는 반면 이를 원상회복시켜주는 데는 3~5개월 걸린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사장은 “10년을 잘 갚아도 한 번 연체하면 신용등급을 떨어뜨리고 대출 이자를 올리거나 대출을 거부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미국에선 과거에 성실히 상환한 대출자의 신용등급 하락을 유예해주는 데 비해 우리나라 CB는 과거 누적 기록보다 현재의 연체기록에 너무 의존해 신용등급을 따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불량자 양산하는 연체이자
제조업체에서 정년 퇴직한 뒤 자그마한 음식점을 연 정모(56)씨. 은행에서 연 10%대 금리로 1억원의 사업자금을 대출받아 식당 운영비에 썼지만 장사는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근근이 은행 이자를 갚다가 한 달간 연체되자 이자는 그 뒤 눈덩이처럼 불었다. 한 달 연체 때부터는 대출 이자뿐 아니라 원금에 대해서도 연체 이자를 물리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연체 이자를 포함해 연 20% 가까운 대출 이자를 부담하게 됐다. 은행 이자를 막느라 고금리의 카드·대부업체 대출을 끌어 쓴 바람에 총 대출금액은 1년도 안 돼 1억8000만원, 이자는 6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연체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말았다.

현재 국내 은행은 대출 원금 연체가 시작되면 한 달까지는 대출 이자에 대해서만 7~9%의 추가 이자를 붙이지만 한 달이 지나면 대출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에 대해서도 7~9%의 이자를 붙인다. 강 국장은 “현행 체제에선 연체 후 몇 달만 지나면 재산을 압류당하기 일쑤고, 대출금 상환을 위해 사채까지 끌어 쓰게 돼 파산하기 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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