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기업에 가격 자율 결정권 … 장성택이 경제개혁 사령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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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지난달 평양 아동백화점을 찾아 볼펜을 직접 시험 삼아 써보고 있다. 6·28 새 경제관리체제의 실무 설계자로 알려진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오른쪽 끝), 박봉주 노동당 부장(전 총리·오른쪽 둘째)이 수행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식 경제개혁 실험이 시동을 걸었다. 이달 들어 북한 당국이 공장·기업소와 주민들에게 구체적 내용을 공개한 새 경제관리체제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경제 살리기 프로젝트다. 지난 4월 15일 첫 공개 연설에서 “더 이상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걸 실행하려는 시도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국가가 공장·기업소의 생산계획이나 물량을 정해주지 않고 자체적으로 생산해, 그 가격과 판매방법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대목이다. 또 농업부문의 경우 생산량의 70%를 국가가 챙기고, 나머지 30%는 농민들이 자체적으로 처분할 수 있게 했다. 북한 경제의 근간인 계획경제의 기본 틀에 손질을 가했다는 점에서 큰 변화다. 그동안 북한 경제를 멍들게 한 주범인 공업생산의 비효율성과 농업부문의 낮은 생산성을 바로잡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새 조치는 한때 북한 전역에 300개까지 늘어나면서 주민 생활에 숨통 역할을 해온 시장을 제도권에 끌어들이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금융 관련 내용도 들어가 있다고 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협동농장이나 공장·기업소의 자율성 허용은 시장 확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불법적이거나 묵인됐던 경제요소들이 공식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김정은이 지난 6월 28일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제 확립에 대하여’란 방침을 내놓은 데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7일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이 김정은의 지시로 경제관리 방식 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운영 중이며 협동농장의 분조 단위 축소, 기업의 경영자율권 확대, 근로자 임금 인상 등을 추진 중이라고 보고했다. 조봉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9일 “북한이 3개월의 시험기간을 거칠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식 발표보다는 주민 교육과 대외 여론 평가 등을 거치며 제도를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계획경제와 배급제라는 두 가지 큰 틀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당국과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통일부 당국자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근간인 배급제를 공식 폐기한다면 북한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기업소에 대한 자율성 부여는 이미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에서 선보였던 것이라 새로울 게 없다는 지적도 있다. 또 식량 사정 악화 등으로 북한의 배급망이 사실상 붕괴된 상황이라 배급제 폐지 여부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조치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신중한 전망이 많다. ‘3난’(달러·에너지·식량난)으로 상징되는 북한 경제의 허약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채 땜질식 제도 개선으로는 한계가 있다.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이던 2009년 11월 경제 업적으로 삼으려 야심 차게 준비했던 화폐개혁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유독 경제 문제에 대해선 자신감을 보이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조치도 후견그룹인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박봉주 노동당 부장(전 총리)이 실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 당국자는 “실패 때 리더십에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부담 때문에 주민들에게는 김정은이 나서는 모양새를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회생을 위해서는 개혁·개방 노선을 선택하고 남북관계와 대미관계 개선 등의 길밖에 없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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