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이 싫다 … 건설사, 주택시장 침체에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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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건설업체가 재개발·재건축사업을 외면하고 있다. 주택시장 침체로 사업성이 악화된 데다 자치단체마다 재개발·재건축 출구전략을 잇따라 내놓아 리스크(위험부담)가 커졌기 때문이다. 2010년 재개발·재건축사업으로만 2조원 이상을 수주했던 삼성물산은 올 들어 이 부문 수주 실적이 단 한 건도 없을 정도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재개발·재건축조합이다. 나서는 시공사가 없어 사업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정이다. 서울 용산구 용산4구역은 지난해 8월 기존 시공사와 결별한 뒤 새 시공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업성 저하 등을 이유로 사업을 맡겠다는 업체가 없어서다. 용산구청 측은 “지난해 말 착공할 계획이었는데 아직 시공사를 정하지 못해 사업이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주공2단지,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4차, 동작구 상도동 대림아파트 등도 사정이 비슷하다. 1조원대 사업으로 한때 건설업체가 앞다퉈 입찰 참여 의향을 보였던 고덕 주공2단지의 경우 지난달 있었던 시공사 입찰에 단 한 곳의 건설업체도 참여하지 않았다. 동부건설이 지난달 서울 은평구 역촌1구역과 결별하는 등 계약해지도 잇따르고 있다.

 사업장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건설업체가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 손을 떼려는 것은 집값이 내려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들 사업장은 대개 지분제 계약인데 지분제는 건설업체가 새 아파트의 일정 면적을 조합원에게 무상으로 제공(무상지분율)하는 대신 일반분양 물량과 상가 등을 팔아 수익을 내는 형태다.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일반분양 물량을 비싸게 팔면 팔수록 수익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 집값이 내려 일반분양 분양가를 올릴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고덕 주공2단지의 경우 건설업계는 일반분양 분양가가 3.3㎡당 2300만~2600만원은 돼야 수익이 생긴다고 보지만 주변 시세는 이보다 3.3㎡당 300만원 정도 싸다.

 그렇다고 수익을 내기 위해 주변 시세를 무시하고 고가로 분양했다가는 미분양이 돼 수익성이 더 악화될 게 뻔하다. 그러다 보니 선뜻 시공을 맡겠다고 나서는 업체가 없는 것이다. 건설업계의 이 같은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미분양 속출, 현금청산 요구 증가 등으로 재개발·재건축사업 자체가 리스크가 큰 사업이 됐다”며 “단순 도급제(건설업체는 단순 시공만 하고 그에 따른 공사비를 받는 형태) 사업지 등에만 입찰하는 등 당분간 건설업체의 수주 전략이 보수적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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