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연 "대중문학은 독인가 약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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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대중문학의 확산이 마치 문학의 민주화로 등식화되고, 그것은 곧 좋은 것, 바람직한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정보화가 무비판적으로 찬양되고 PC문학의 등장과 일반화를 포함한 대중문학의 보편화 현상이 문학의 민주화로 가는 길일까. 아니, 문학은 민주화되어야 하며, 그것은 가능한 일일까. 대중문학론이 우리에게 심각하게 남겨 놓은 질문은 오히려 이런 것들이다. "


문학평론가 김주연(金柱演.숙명여대 독문과 교수.사진) 씨가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시와 소설을 읽고 펴낸 평론집 〈디지털 욕망과 문학의 현혹〉에 나오는 문제제기다.


세기말에서 새로운 세기로 넘어온 한국문학의 현장점검으로 볼 수도 있는 이 신간은 특히 문학의 대중화 경향에 대해 긍정과 부정, 수락과 우려의 양면을 짚어내고 있다.

65년부터 평론 활동을 시작한 김씨의 이번 책은 그가 최인호씨의 장편 〈별들의 고향〉등이 베스트 셀러로 떠오르던 70년대부터 문학의 대중성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중진급 평론가의 평론집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끈다.

70년대까지 우리 문학은 전통적으로 엘리트주의에 근접해 있었다. 문학은 순수해야 했으며 문사(文士) 는 청빈해야 했고, 그것은 곧 높은 가치로 평가되었다.

요컨대 소수의 귀족적 지성에 의해 문학은 그 질의 수준이 지켜지는 것으로 암묵리에 사회적 동의가 이뤄져왔다. 대중에 영합하는 일은 가치 없는 일일 뿐 아니라 비굴하고 비문화적인 일로 비판되었다. 60년대까지 우리 문학은 등장 인물들의 직업이나 성격마저 고상해야 했다. 그것을 깬 신호탄이 70년대 〈별들의 고향〉의 주인공 '경아' 다.

민주화를 외치는 민중문학과 기존의 형식 및 내용을 깨뜨리던 해체주의 시대였던 80년대 문학은 창작과 유통, 그리고 독서 측면에서 대중문학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90년 장정일씨가 섹스, 신과 맞설 수 있다는 교만, 그리고 죽음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장편 〈아담이 눈 뜰 때〉를 발표하며 지금까지 많은 시.소설이 이 삼박자의 어두운 감각적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출판사나 문학상 등이 이 어두운 감각주의자들을 부추기며 돈벌기에 앞장서는 대중문학의 자동화된 어둠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김씨가 본 대중문학의 흐름이다.

"고도로 섬세해진 기계문명의 발전된 감각 앞에서 전통적 위의와 고상함만으로 문학의 자장이 유효한 떨림을 지속하기는 힘들다. 섹스와 죽음은 높은 감염성.휘발성으로 비교적 둔감한 문화감각을 갖고 있는 대중들에게 문화통로의 기능을 하며 전통과 새로움을 잇는 매개기능을 한다. "

김씨는 문학 속에 만연된 섹스와 죽음을 대중성 측면에서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그 부정적 측면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한다.

"문학의 전통적인 정신과 본질, 그리고 그 양식이 일체의 비인간적인 억압과 기존질서, 그 체제에 대한 비판에 있다면, 작가와 작품은 당연히 이같은 비판 정신의 구현자이어야 할 것이다. 현실에 대한 순응성과 수동적 자세는 이러한 의미에서 전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하물며 문학이 소비적이라면?" 김씨는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가치판단인데 대중문학에서는 그런 가치를 지향하지도, 가치를 판단하는 평론 등의 매개항도 없는 생산과 소비 회로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씨는 특히 문학저널리즘의 무분별한 대중문학 수용을 경계했다. "문학저널리즘이 가치 판단의 메커니즘을 유지한 채 대중문학의 영양가를 제대로 식별할 수 있을 때 우리 문학의 식단은 오히려 풍성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요체는 본격문학.대중문학의 구분이 의미가 없어진 시대, 이제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의 판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중문학.포스트모던과 해체 문학의 단계를 거치면서 소위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이분법은 의미를 잃었다. 그런데도 자꾸 이분법적 발상으로 논의에 들어가면 논의 자체가 가치를 잃고 문학을 한없이 하향 평준화시킬 수밖에 없다.

대중문학 시대를 멍청히 바라보며 개탄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이제 어떤 작품이 왜 좋고 나쁜가를 섬세하게 따져가며 이 시대 문학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해야 된다. " 아무리 대중문학 시대라 해도 인터넷에서 '뜨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 되고, 잘 팔리는 작품이 좋은 작품 행세를 하는 문학의 가치전도 현상만은 막자는 것이다.

독자의 많고 적음에 의해 문학의 우열이 가려진다면 그것은 문학의 민주화가 아니라 문학의 우민화라는 것이다.

"대중화.정보화 사회에서 새롭게 열리는 감동의 세계는 어떠한가. 또 그러한 것들에 의해 마모돼 가는 인간적 진실은 무엇인가를 문학은 대중 독자들에게 감동적으로 전해야 한다. 또 문학 평론이나 이론도 이제 적극적으로 그런 문학 감동의 회로를 모색해야만 된다.

사회는 변하게 마련이고 개념 또한 바뀌게 마련이다. 문학이 대중적 소비물이 아니라 삶과 사회의 성찰의 장이 되게 하려면 사회적 변화 위에 인간적 감동을 올려놓아야 한다. "

지난 40년 가까이 문학 현장을 지켜본 김씨는 전통이 완전히 와해되고 총체적으로 대중문학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작금의 한국문학이 너무 안쓰럽다 한다.

그래 제목도 '문학의 위기' 로 정할까 하다 '디지털 욕망과 문학의 현혹' 으로 잡았다. 욕망과 현혹의 시대일지라도 '세계의 질서이어야 할 문학이 어디서부터 몸을 다시 세워야 할까' 를 묻고 모색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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