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테이블] '지적재산권 보호'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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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국상공회의소(무역투자연례보고서)와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무역장벽보고서)
는 올해도 한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를 거론했다. 한국 정부도 최근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 등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했다. 지적재산권 보호가 사회 문제로 다시 부각돼 한국은 "외국의 시각이 과장됐다" 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 등은 "아직 멀었다" 고 몰아세운다. 한국의 지적재산권 환경 개선을 논의하기 위해 주한 외국 기업인 및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회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장국현 국제본부장이 맡았다. 한국P&G 앨 라즈와니 사장.한국마이크로소프트 고현진 사장.주한EU상의 지적재산권위원회 부위원장 타힐 후세인(베텔스만 코리아 사장).한국지적소유권학회장 이정훈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공동대표)가 토론에 참석했다.

▶사회〓국내 지적재산권 보호 현황을 어떻게 보는가.

▶타힐 후세인〓지난 2~3년간 법과 제도는 크게 개선됐다. 이젠 선진국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그러나 법 집행이 철저하지 못하다. 단속이 확실치 않으면 지적재산권 관련 제도는 무용지물이다. 프라다.구치 같은 명품의 모조품도 문제지만 책이나 생활용품과 같은 값싼 물품도 무단복제가 널리 이뤄지고 있다. 보다 광범하고 적극적인 단속이 필요하다.

▶앨 라즈와니〓그동안 단속 실적이 꾸준히 늘었지만, 실제로 행해지는 것에 비하면 단속이 여전히 부족하다. 지적재산권 보호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해외자본이 어느 한 나라에 투자하기로 결정할 때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를 비중있게 따지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도 그동안 많은 투자를 했지만, 지적재산권이 잘 보호되고 있다면 투자를 더 했을 것이다.

▶고현진〓한국은 그동안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이어서 정부와 기업이 지적재산권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최근 기업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으나 일반인도 변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이정훈〓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법은 1957년 만들었지만 87년까지 30년 동안 한번도 개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 지식을 파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회 관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단속을 벌이기 시작했고 일부 대학원에선 지적재산권을 전공하는 과정도 생겼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 상황을 보는 시각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을 우선감시대상국(PWL)으로 했지만, 내부적으론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후세인〓짧은 시일 내에 모든 게 바뀔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 정부나 기업들은 소비자 교육에 더 신경써야 한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지적재산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라즈와니〓지적재산권을 보호하면 '윈-윈(win-win) 게임' 이 된다. 소비자들은 가짜 상품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진다. 기업은 권리 침해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또 국가적으로 해외자본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벤처기업들도 기술을 자체 개발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국내에서부터 지적재산권을 잘 보호해야 할 것이다.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고〓기업들은 정부의 단속에만 의지하면 안된다. 단속 강화만 요구하면 국내 소비자들의 감정적인 반발만 산다. 지적재산권 보호로 실제 이득을 얻는 당사자는 기업이다. 따라서 기업은 스스로 계도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학교에서부터 지적재산권 문제를 가르쳐야 한다. 어려서부터 지적재산권이 반드시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또 근본적으로 창의력을 중시하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지식산업의 인프라가 성장할 것이다.

▶라즈와니〓장기적으론 교육이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 인식을 바꾸려면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또 그런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 TV나 신문 등 언론매체에서 단속 기사를 비중있게 다루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후세인〓주한 외국기업들이 공항 세관직원들을 대상으로 모조품과 진품을 구별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지만, 담당자가 자주 바뀌어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 세관직원들이 전문화돼 있어 실적이 뛰어나다. 검찰이나 법무부 관계자 등 지적재산권 당국자를 해외로 보내 선진국 시스템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정부가 단속을 철저히 해야겠지만 능력에 한계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TV에 나와 지적재산권 보호를 호소할 정도로 정부는 노력하고 있다. 이젠 민간부문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관련 협회와 협력해 홍보 포스터를 만들거나 기금을 만들어 광고 캠페인을 하는 등 적극 활동할 필요가 있다.

정리〓서익재 기자 ik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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