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수해 사망·실종 500여 명 … 정부, 지원 여부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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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안주시에서 주민들이 4일 적십자사의 긴급구호물품을 배급받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5일 “6월 말부터 7월 31일 사이 태풍과 폭우, 무더기 비로 인한 큰 물로 169명이 사망하고 144명이 부상당했으며 400명이 행방불명됐다”고 보도했다. [안주 AP=연합뉴스]

올여름 태풍과 수해로 인한 북한의 사망·실종자가 500명을 넘어서면서 정부가 대북 지원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북한 당국이 피해상황을 적극 알리며 대북 지원 확보에 공을 들이고, 국제기구의 지원에 이어 우리 민간단체들도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인명피해를 처음 공개한 건 지난달 20일. 당시 태풍 카눈으로 주민 7명이 사망했다는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정부는 예년 수준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같은 달 28일 중앙통신은 “태풍과 집중호우로 88명이 사망하고 134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이어 1일에는 “지난달 29~30일 폭우로 31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실종됐다”며 추가피해를 밝혔다. 4일 보도에서는 “6월 말부터 7월 31일까지 169명이 숨지고 실종자가 400여 명”이라고 소개했다.

 일찌감치 “수해와 관련된 대북 지원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바 없다”며 선을 그은 정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인명피해에 내심 곤혹해하는 입장이다. 북한이 지난달 30일 유엔에 식량과 연료 지원을 요청하는 등 수해복구를 내세운 대북 지원 확보에 발 빠르게 나서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다.

 북한 요청에 호응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피해가 큰 16개 군에 곡물 336t을 긴급 지원하겠다고 이미 밝혔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식수와 위생도구 4000여 세트를 제공하고, 식수정화제 1000만 정 이상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국제적십자사연맹(IFRC)도 이재민 1만 명을 긴급 지원하기 위해 30만 스위스프랑(약 30만8000달러)을 특별예산으로 책정했다. 50여 단체가 참여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등 우리 비정부기구(NGO)도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캠페인 계획을 짜며 통일부 등 관계 부처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미국의 움직임도 주시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지난달 31일 “대북 인도지원은 정치나 안보 사안과 별개라는 게 미국 정부의 오래된 원칙”이라고 밝히자 대북 지원을 시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영수(정치외교학) 서강대 교수는 5일 “이명박 정부가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 지원은 남북관계와 별개라는 원칙에 맞춰 국제 흐름과 동떨어지지 않게 지원에 나섰으면 한다”며 “대북 지원을 대북 정책의 지렛대로 삼으려 하면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여름 라면·초코파이 등 50억원 규모의 수해지원 제안을 했다. 하지만 북한이 “통 크게 지원해달라”며 쌀과 시멘트를 고집해 결국 불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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