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차한잔] '책세상 문고' 100권째 펴낸 김광식 편집주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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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와나미(岩波)문고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인문학 위기 극복의 모범 사례'란 평가를 받는 '책세상 문고.우리시대'의 산파인 김광식(47) 책세상 편집주간의 이야기다. 2000년 4월 '한국의 정체성'(탁석산 지음)으로 선보인 이 문고는 최근 '메가테러리즘과 미국의 세계질서 전쟁'(구춘권 지음)으로 100권을 채웠다.

"입사한 지 10년 정도 되었던가요? 우리의 눈으로, 난민촌.원조교제.초국적 기업.영화 등 시대의 코드를 읽을 수 있는 문고본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죠."

2000여 종 넘게 펴내 일본 지성의 젖줄 구실을 한 이와나미 문고를 다분히 의식한 기획이었다. 1970~80년대를 장식한 을유문고 등이 번역서를 다수 포함했던 점과도 달랐다. 수익성이 떨어져 제대로 된 문고판이 없던 무렵이었으니 모험이기도 했다.

"국내 박사급 강사만 5만 명이 넘었어요. 그들에게 강단 밖에 '캠프'를 마련해 주려는 의도도 있었죠. 그러나 원고지 1000장 이상의 대중적 글쓰기가 가능한 필자는 드물었어요."

국내 필자 중심의 원칙에 휴대성, 대중성을 감안하니 이래저래 원고지 600~800장 분량의 문고판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정작 진통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주제를 정하고 필자를 물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초창기엔 철학자 김영건씨 등 편집위원들과, 서울 홍제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밤새워 토론과 통음을 하기 예사였다.

"편집위원들끼리 아슬아슬할 정도로 격론이 오가기도 했고 편집과정에서 너댓 번 퇴고를 당한 필자가 틀어져서 불발된 기획도 있죠."

본인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데다 인문서 전문 베테랑 편집자들을 전담 배치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단다. 출판문화상도 받았고 '한국의 정체성'은 26쇄 6만5000부가 팔리는 등 상업적으로도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발굴한 필자들이 학계에서 자리를 잡고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것도 큰 보람"이라는 그에게 포부를 물었다.

"지금 진행 중인 기획만 150종 정도거든요. 1000종은 돌파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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