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국인을 전기고문하는 나라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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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중국 당국의 고문행위를 구체적으로 고발했다. 3월 29일 체포된 직후부터 묵비권을 행사하자 4월 10일부터 잠을 재우지 않았으며, 전기고문과 손바닥으로 얼굴을 구타하는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이후 묵비권을 풀고 조사를 받는 한 달 동안에도 수갑을 채우고 의자에서 잠자게 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중국 당국은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고문방지협약 당사국으로서 자국민도 아니고 외국인에게 그토록 가혹한 고문을 가한 사실은 중국이 국가로서 위신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케 한다.

 중국 정부는 아직 우리 외교부의 고문 사실 확인 요청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취재에는 고문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지난 20일 귀국한 김영환씨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고문 사실을 폭로한 지 10일 만이다. 한국 정부의 공식 확인 요청에는 응답조차 하지 않으면서 언론을 통해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아 중국 정부는 김씨의 고발을 부인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의심된다. 중국 정부는 이미 지난달 11일 김씨의 영사 접견을 통해 고문 사실을 확인한 정부가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부인한 적이 있다.

 김씨는 고문으로 입은 상처가 모두 아물어 신체상 증거는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문을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특히 전기고문 당시 얼굴에 복면을 씌운 채 심전도와 혈압검사까지 한 사실 등 보아 전기고문이 상부의 승인을 받고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런 구체적 진술들을 종합할 때 중국 정부의 발뺌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고문의 가해자가 직접 증거를 은폐한 뒤 고문 사실을 부인하는 건 인권 후진국의 전형적인 행태다. 그러나 은폐가 언제까지 이어질 순 없다. 김씨의 폭로 이후 비슷한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의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서둘러 고문 진상을 조사해 공개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런 조치가 없다면 중국의 고문 관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80만 명에 달하는 중국 내 한국 교민들은 물론 연간 400만 명에 달하는 중국 여행자들이 언제든지 김씨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을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중국 정부가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여론화하는 일도 추진해야 한다.

 김씨의 경우 체포된 지 29일이 지나서야 첫 영사 접견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미국이나 일본 국민들은 체포된 직후 하루 이내에 영사 접견이 허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고문 등 인권침해를 당할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한·중 간에도 이런 수준의 영사보호협정이 체결돼야 한다. 중국 정부가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협정 체결노력을 소홀히 해 온 정부도 책임을 느끼고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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