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대신 내가 입대” … 홍명보 믿음에 순해진 ‘야생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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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마의 포효’ 30일(한국시간) 시티 오브 코번트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림픽 남자 축구 예선 2차전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후반 12분 남태희가 올린 크로스를 박주영이 감각적인 다이빙 헤딩슛으로 연결해 선제골을 터뜨리고 있다. [코번트리 AP=연합뉴스]

박주영(27·아스널)은 다루기 힘든 ‘야생마’다. 누구보다 뛰어난 자질을 갖췄다. 하지만 재능을 항상 드러내진 않는다. 말을 잘 듣는 듯하다가도 가끔 통제하기 힘든 길로 빠진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선수다. 홍명보(43)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은 그런 박주영의 마음을 움직인 몇 안 되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 비결은 간단하다. 끝까지 믿었다. 잘 하고 있을 때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도 변치 않는 신뢰를 보여줬다.

 박주영은 30일 새벽(한국시간) 시티 오브 코번트리 스타디움에서 끝난 스위스와의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본선 B조 2차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렸다. 후반 12분 남태희의 크로스를 호쾌한 다이빙 헤딩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1-1로 동점이던 후반 19분에는 김보경이 결승골을 터뜨려 한국은 2-1로 승리했다. 1승1무(골득실 +1)가 된 한국은 가봉을 2-0으로 꺾은 멕시코(1승1무·골득실 +2)에 골득실에 밀려 2위에 올랐다. 2일 열리는 가봉과 3차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8강 진출이 가능하다.

홍명보 감독이 박주영이 골을 터뜨리자 엄지를 치켜 올리고 있다. [코번트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박주영은 그간 적잖은 마음고생을 겪었다. 26일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부진했기 때문이다. 부담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올림픽 개최지 런던은 박주영의 소속팀 아스널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소속팀을 포함한 프리미어리그 관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압박감이 되어 돌아왔다.

 멕시코전을 마친 뒤 박주영의 부진한 경기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홍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박주영에게 특별한 주문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지켜보며 스스로 일어서기를 바랐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주영이의 경기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컨디션도 상당히 올라와 있다. 심리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다면 대화를 통해 찾아보겠다”는 말로 힘을 실어줬다.

 홍 감독과 박주영을 이어주는 신뢰의 끈이 처음 만들어진 시점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린 2010년이다.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로 박주영을 선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박주영은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며 선수단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이기면 함께 웃었고, 질 땐 함께 울었다. 축구 선·후배 관계를 떠나 끈끈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졌다. 박주영이 병역 관련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을 때 홍 감독이 기자회견을 열도록 유도했다. 이 자리에서 홍 감독은 “주영이가 군대 안 가면 내가 가겠다”며 박주영에게 무한 신뢰를 보냈다. 홍 감독은 늘 “나는 주영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꼭 필요한 말 한두 마디면 서로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박주영의 마음을 움직여 뛰게 만드는 힘은 ‘이심전심(以心傳心)’에 있었다.

코번트리=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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