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고문당했다는데 정부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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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가 중국에서 전기고문을 당했다는 진술이 한·중 외교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양상이다. 우리 외교당국이 사실 확인과 재조사 촉구 수준에서 진전된 대응을 못하자 정치권과 인권단체에선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국 당국은 가혹행위 사실에 대해 확인이나 답변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외교통상부와 정보당국이 (전기고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중 외교 마찰로 번질까 쉬쉬했다는 게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또 “피해자인 당사자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하면 정부는 중국이 부인하더라도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며 “향후 이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굴종할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통위에 출석해 “김씨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중국 측에 재조사를 촉구했고 중국 측이 ‘당국과 협의하겠다’고 해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4월 26일과 6월 11일 두 차례 영사면접에서 고문 사실을 알고도 비밀에 부쳤다는 비판에 대해 “중국이 김씨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개는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올 초 탈북자 북송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조용한 외교’에서 ‘공개 외교’로 전환한 데 비해, 자국민의 전기고문에 대해선 지나치게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외교부 내에서도 나온다. 한 정부 당국자는 “중국이 일본 등과 영토 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과 외교 마찰을 빚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며 “적절한 수준의 유감 표명이나 사과를 받아내기까지 국제기구를 통한 다각적인 외교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27일 오후 서울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는 탈북난민구출네트워크 등 4개 단체 주최로 중국 정부의 전기고문을 규탄하는 회견이 열렸다.

2003년 탈북자를 돕다 중국 지린(吉林)에서 체포돼 1년6개월간 수감됐던 정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는 “팬티 차림의 알몸으로 3일 넘게 잠도 재우지 않고 식사로는 하루 옥수수 한 개만 주는 등 신체적·정신적 고문을 당했다”며 “옆방에서 맞는 소리도 들렸고 감옥에선 햇빛도 못 보게 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에 수감된 한국 국민은 61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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