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문서 교환시스템 안통하는 곳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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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없는 무역요? 관세사나 대기업은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

월 1백만달러 정도를 수출하는 의류업체 A사 林모 부장의 말이다. 이 회사는 1997년 ''무역 업무에서 서류를 없앨 수 있다'' 는 정부 말만 믿고 전자문서교환(EDI) 전담 직원을 뽑아 교육까지 시켰다가 낭패를 봤다. EDI를 이용해 보니 ''단절 구간'' 이 너무 많아 종전처럼 서류를 들고 왔다갔다 해야 할 사람이 따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회사는 고졸사원 세명을 다시 뽑았다.

정부가 91년부터 추진해온 무역자동화 사업이 수출입 관련 서류를 발급하는 협회.조합 및 검사.검역기관, 금융기관의 비협조와 중소기업의 인식 부족 등으로 ''반쪽 자동화'' 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해까지 5백50억원을 들여 EDI망을 깔았지만 세관과 관세사.운송업체.장치장의 통관 업무만 자동화됐을 뿐 수출입 관련서류 작성이나 외환.물류 등의 업무는 EDI 이용률이 30%선에도 못미친다. 국내 무역 EDI망을 전담하는 한국무역정보통신(http://www.ktnet.com)에 가입한 곳은 전체 무역업체 8만9천5백58개(2월말 현재)의 10%선인 9천여개에 불과하다.

◇ ''눈 도장'' 관행=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의류업체 직원인 金모씨의 일과는 강남구 대치3동에 있는 한국의류산업협회에 가서 수출승인서를 받아오는 일로 시작된다. 오후에 가면 몇시간씩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간다.

오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발급하는 원산지증명을 떼러 간다. 은행과 관세사 사무소에도 몇번씩 오가야 한다. 중소 수출입업체들이 EDI 이용 때 맞는 첫 단절구간은 수출입승인서를 발급해 주는 각종 협회와 조합이다. 현재 수출입승인서를 떼주는 1백개 협회.조합 가운데 EDI가 연결된 곳은 아홉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EDI가 연결된 곳도 이용률은 저조하다.

수출입 절차상 거쳐야 하는 정부 검사.검역기관 네곳 중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청만 EDI로 연결돼 있을 뿐 국립식물검역소와 국립수의과학검역원.국립수산물검사소는 연결조차 안돼 있다.

◇ 중소기업 지원책 시급=관세청과 관세사.운송업체.장치장간 통관업무는 EDI 사용을 의무화해 1백% 자동화됐으나 다른 서류 준비나 외환.물류 부문은 자동화 여부를 자율에 맡겨 왔다. 하지만 통관 이외 업무도 EDI 사용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해 중소기업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업자원부 권오정 서기관은 "통관업무 1백% 자동화를 바탕으로 통관 이전과 이후 단계까지 자동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 이라며 "불필요한 절차는 자동화하기보다 아예 없애는 등 온라인 시대에 맞게 무역절차를 혁신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 EDI란 : 각종 서류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표준화된 전자문서로 바꾸어 전용선을 통해 주고받는 전자문서 교환시스템.

기획취재팀=민병관.정경민.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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