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방학을 맞아 혼자 남겨진 맞벌이 아이들 누가 돌보고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까지. 10년 전에도 12시간 걸리더니 아직도 그대로다. 그 긴 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 앉아서 주는 대로 받아먹었더니 기업형 양계장 닭의 맘을 알 것도 같다. 드디어 서울 도착. 짐을 찾고 택시를 탔다. 택시 백미러에 얼굴을 들이댔다. 시꺼먼 점 4개. 선명하다. 남들은 외국에 나가 점이라도 빼고 온 줄 알 게다. 빈대떡 부치다가 이리 됐다 하면 그 누가 믿으려나.

 매년, 이맘때만 되면 우리 부부는 딸들을 보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간다. 갈 때마다 작은딸 집에서 죽도록 일만 하다 온다. 매번 ‘죽어도 모른 척해야지’ 하고 떠나지만 이번에도 죽도록 일만 하다 왔다. 이번엔 덤으로 얼굴에 흉터까지 얻었다. 사연은 이랬다.

 도착하기 일주일 전. 작은딸네가 이사를 했단다. 돈 절약한다고 짐을 박스에 넣는 일도, 떠날 집과 살 집 청소도 둘이 퇴근하고 돌아와 며칠씩 걸려 했다더니 부부 얼굴이 반쪽이 됐더라. ‘난 모른다. 젊은 너희들이 해라’ 하고 행여 마음이 흔들릴까 봐 다짐 또 다짐했다. 애들이 출근한 후 정리 좀 했나 싶어 부엌 서랍을 열었다. 화장솜과 면도기가 들어있다. 옷장 서랍을 열었다. 밥주걱과 뒤집개, 튀김용 젓가락까지 들어있다. 차곡차곡 수건이 들어있어야 할 선반을 열었다. 신발과 핸드백이 뒤죽박죽이다. 박스를 뜯고 급해서 적당히 집어넣은 꼴이다.

 쉬는 날 알아서 하겠지 싶어 침대에 벌렁 누웠다. 꺼칠해진 딸아이 얼굴이 아른거린다. 안 되겠다. 벌떡 일어나 차를 타고 한국 마켓으로 가서 녹두랑 김치랑 고기랑 사왔다. 녹두를 물에 담가놓고 김치를 짜서 다진 다음 서랍 정리에 나섰다. 대충 정리하고 프라이팬을 불 위에 올려놓고 기름을 부었다. 조금만 서두르자. 이제 애들만 퇴근하면 따끈따끈한 녹두빈대떡을 먹일 수 있다. 그때다. 요란한 소리와 동시에 기름이 얼굴로 튀어올랐다. 따가웠다. 찬물을 틀어 씻고 있는데 막 퇴근한 딸이 놀라 그 길로 약국으로 달려갔다. 휴우. 물집이 없으면 심한 것 아니고 검은 점도 곧 없어진단다.

 소식 듣고 달려온 큰딸. 놀러 온 엄마를 일 시켰다고 동생에게 난리다. “옴마, 미안해 내가 돈 많이 벌어 예쁘게 성형해 줄게.” 말인지 징징대는 건지. 미안할 때마다 내미는 작은딸의 어리광. 같은 배 속에서 나온 딸들이 어쩜 이리도 다를까. 이번 주말 많은 사람을 초대했다는 큰딸. 느긋하다. 만들고 주문하고 장식하고 다 혼자서 한다던데. 씩씩하고 듬직하지만 가끔은 섭섭하다. 괜찮다 딸들아. 엄마 얼굴 점이 뭔 대수냐. 얼굴에 점 있는 예쁜 배우 많기만 하더라. 너희들만 건강하면 되지 않을 까불이?

 또 방학이다. 혼자 남겨진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걱정이다. 얼굴에 점을 만들어가며 빈대떡이라도 부쳐주고 싶은 맞벌이 엄마도 많을 터인데 말이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