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 특허료 받겠다” 오라클, 구글에 선전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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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SW) 업체인 미국 오라클의 마크 허드(55·사진) 사장은 24일 안드로이드 기반 이동통신 기기에 대해 "원천 기술 사용료를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오라클의 미래 사업전략을 소개하기 위해 방한한 허드 사장은 24일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 호텔에서 한 기자 간담회에서 “안드로이드가 사용한 프로그래밍 언어 자바는 오라클이 집중 투자하는 핵심 SW”라며 “사용료를 내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나 대만 HTC처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사용하는 스마트폰 제조 업체에 기술료를 요구하겠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오라클은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제조 업체에 대해 기술료를 받지 않았다.

 오라클은 2009년 미국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하면서 자바 기술을 확보했다. 그 뒤 오라클은 자바 관련 특허 7건을 구글이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미국에서 10억 달러(약 1조1200억원)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지난달 미국 법원은 “안드로이드는 무료로 배포된 자바의 일부 기술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한 구글의 손을 들어줬고, 오라클은 항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첫 대결에서는 이처럼 패배했지만, 허드 사장은 24일 한국에서의 기자간담회를 통해 구글뿐 아니라 안드로이드를 활용하는 스마트폰·태블릿PC 제조사에도 특허권을 주장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구글에 재차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허드 사장은 또 “지난 1년간 인수합병에 60억 달러(약 6조8760억원)를 사용했고, 지금도 300억 달러(34조3800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며 기술 확보를 위한 인수전을 계속할 뜻을 내비쳤다.

 허드 사장이 한국을 찾은 것은 오라클이 SW와 HW인프라를 결합해 내놓은 미래전략 ‘데이터센터 최적화’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오라클은 원래 기업용 데이터베이스(DB)의 강자로 통했다. 하지만 썬 인수 후로는 DB와 각종 SW, 서버를 통합한 ‘엔지니어드 시스템’을 개발해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허드 사장은 “DB와 서버, 운영체제, 애플리케이션을 기업의 IT관리자가 따로 구입해서 스스로 조합해 관리하도록 하는 것은 고객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이라며 “이리저리 나누어진 SW와 HW를 오라클 통합 시스템으로 바꾸면 속도가 최대 150배 빨라지고 관리 비용은 절감된다”고 말했다.

 허드 사장은 이날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11월까지 전 세계 60여 개국을 돌며 이 미래전략을 설명할 예정이다. 한국을 첫 방문지로 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한국은 통신과 전자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큰 시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라클 본사 CEO가 우리나라를 찾은 것은 지난 1997년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이 방한한 이후 15년 만이다.

 오라클은 올초 포스코와 약 500억원 규모의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 구축 계약을 맺었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대한항공 역시 오라클의 고객사다. 최근 포스코 정준양 회장이 미국에서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을 만나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에 대해 허드 사장은 “포스코는 매우 중요한 고객사”라고만 답하며 말을 아꼈다.

 오라클은 ‘신탁’이라는 의미로,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와 더불어 ‘실리콘밸리 1세대’인 래리 엘리슨이 1977년 창업했다. 엘리슨은 재산이 360억 달러(약 41조4000억원)가 넘는 미국 3위 갑부이며, 2002년까지 애플 이사회 등기 임원을 지낸 잡스의 ‘절친’이기도 하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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