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방치된 자동차 시트커버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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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효문공단 한 공터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의 모습. 자동차 비닐 시트 커브가 20여년간 버려져 있다보니 풀밭처럼 보인다. [김윤호 기자]

울산 북구 효문공단 한 공터에는 악취가 풍기는 높이 10m쯤 되는 언덕이 솟아 있다. 겉으로는 잡초와 덩굴 식물로 둘러싸여 있지만 자동차 좌석 시트 커버와 각종 폐기물 1만6500t의 쓰레기 더미다.

 19일 효문공단에서 만난 이진형(25)씨는 “비가 오면 썩은 물이 바닥에 고여 구토가 날 지경이다. 빨리 치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구청에 따르면 이 쓰레기 더미가 생긴 것은 20년 전이다. 1992년 6월 이 공터 앞에는 자동차 비닐 시트 공장이 있었다. 이 업체는 비닐 시트 커버를 공터에 쌓아두고 시트를 생산하던 중 부도가 났다. 공터는 시트 커버와 함께 경매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이후 2012년까지 6차례나 땅주인이 바뀌면서 시트 커브는 활용되지 않고 그 자리서 오염돼 갔다. 세월이 지나면서 산업 폐기물과 일부 생활쓰레기까지 버려지면서 지금은 30억원을 들여 치워야 하는 골칫덩이가 됐다.

 땅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쓰레기 더미를 처리하지 못한 이유는 시트 커버가 3.3㎥당 100만원쯤 하는 땅값에 포함된 재산(物權)이었기 때문이다. 땅 위의 건물처럼 시트 커브가 하나의 재산으로 땅과 함께 묶여 거래됐었다. 이 공터가 경매로 처음 넘어갔을 때만 해도 시트 커버는 수천여만원의 값어치가 있는 상품이었다.

 한영석(47) 울산 북구청 환경미화과 주무관은 “땅을 넘기는 지주는 시트 커브가 오염되자 처리하지 않고 조금 싸게 새 지주에게 땅을 팔고 새 지주 역시 그대로 안고 있다가 다른 지주에게 되팔다 보니 이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폐기물 관리법상 이 쓰레기 더미는 개인 사유지에 있어 땅 주인이 처리해야 한다. 쓰레기가 아닌 재산이기에 행정기관에서 강제로 치우도록 할 법적 근거가 없다. 환경오염을 내세워 제재하려 해도 처음 시트 커브를 쌓아둔 부도 업체 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찾더라도 시트 커버는 재산으로 분류돼 고발할 수 없다는 게 북구청의 설명이다.

 민원이 잇따르자 2005년부터 북구청은 환경부에 처리 예산을 요청하고 지주에게도 ‘깨끗한 환경을 위해 치워달라’는 요청을 해마다 서너 차례 해오고 있다.

 이용원(47) 울산시 환경자원과 주무관은 “시가 30억원의 예산을 북구청에 지원해 치우면 지주만 이익을 보기 때문에 예산을 배정할 수 없다. 시가 치운다면 땅 주인에게 특혜를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일한 해결책은 지주가 공터에 건물을 지으면서 스스로 처리하거나 정부와 울산시가 공단 개발 사업을 하면서 별도 예산으로 처리하는 방법뿐이다.

 최근 땅주인인 울산 A업체는 북구청 환경미화과에 “시트 커버 활용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해왔으나 실현 여부를 알 수 없어 악취 고통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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