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유도 이색극 '유언장쓰기' 공연

중앙일보

입력

"젊은 시절 예술가답게 한번 폼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죽으려니까 '날 위해 울어줄 사람은 있을까' '내가 사랑한 여자들은 어떻게 하나'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 (심철종)

"유서라는 것은 죽은 자가 이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백지의 유언장을 남깁니다. " (김국형)

지난달 30일 대학로 아룽구지소극장에선 이색공연 한편이 펼쳐졌다. 일명 '캠페인성 퍼포먼스극 유언장 쓰기' .

공연 시작 시간이 되자 심철종씨(극단 심철종 퍼포먼스제작소 대표.연극배우) 가 무대 위에 오른다. 편안히 의자에 앉아 죽음을 생각했던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담담히 풀어낸다.

이야기 도중 술을 한잔 들이키기도 하고, 삭발한 머리를 전기 면도기로 밀기도 한다.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심씨의 모습(삶) 과 무대 양쪽에 설치된 6대의 TV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아우슈비츠와 전세계 분쟁지역의 비디오(죽음) 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어서 강정균(마임작가) .김동희(연극배우) .윤승혜(무용가) .김국형(영화감독) 이 차례로 나와 자신의 유언을 말한다. 유언의 형태 역시 자유롭다.

폐쇄된 공간에서 탈출을 꿈꾸는 마임이스트와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연극배우의 절규, 하늘을 날고 싶은 무용가의 꿈 등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심씨의 기획의도는 이렇다. "요즘 인터넷에서 자살사이트가 유행한다기에 한번 둘러봤는데, 대부분의 유언들이 죽음보다는 삶에 집착하는 내용이더라구요.

그래서 힌트를 얻었죠. '죽기 위해 쓰는 유언장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내일을 다짐하는 자리를 만들어보자' 라구요.

"관객들에게도 무대에서 유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극단측은 맨정신으로 유언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술도 준비했다. 8일까지 아룽구지극장. 02-338-9240.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