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스 수정주의 수정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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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일본 발(發) '역사 수정주의' 망령으로 괴롭다.

일본의 우익이 주도하는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반동적 흐름의 기저에는 자학사관(自虐史觀)의 극복이라는 명분이 깔려 있다. 이로써 명백한 침략전쟁이 삽시간에 해방전쟁으로 둔갑하는 기막힌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게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 횡행하고 있는 역사 수정주의의 실체다.

이렇듯 '수정주의' 란 말의 뉘앙스는 다소 모호한 구석이 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 는 의미 정도로 순진하게 생각했다간 일본식 역사 수정주의의 합목적성을 용인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기존의 정통적(혹은 전통적) 연구방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도전으로 이해하면 된다.

한국의 학계에도 한때 이 수정주의 열풍이 휘몰아친 적이 있다. 그 바람의 세기가 하도 대단했기 때문에 아직도 그 영향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사실은 옳다.

태평양 너머에서 이 태풍을 몰고온 주인공은 브루스 커밍스(58.미 시카고대 국제동아역사과 교수)다.

커밍스는 81년과 90년 미국에서 『한국전쟁의 기원』 1.2권을 잇따라 출간하며 한국의 현대사 특히 한국전쟁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한국전쟁은 '정상적인' 탈식민지화를 경험한 북한이 '시대착오적' 인 사태발전을 경험하고 있던 남한을 해방시키고자 한 내전(內戰.civil war)이었다는 것.

그 도발의 책임문제에 있어 커밍스는 김일성보다 미국에 의한 전쟁의 유도나 음모 가능성을 제기했다. '유도+침략(provoked invasion)' 이었다는 이야기다.

이 수정주의 시각은 적어도 80년대 우리의 역사.정치학계 등의 최대 화두였다. 좌파 시각에서 제기한 이 '미국의 책임론' 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한국현대사(한국전쟁) 연구에 폭발적인 관심을 증폭시켰다. 커밍스는 가위 신드롬이었다. 그 막강한 영향력를 들어 저자는 한국현대사 연구를 '커밍스 이전과 이후' 로 구분해야 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이 책은 좌파적 시각의 '커밍스 콤플렉스' 나, 우파적 시각의 '커밍스 알레르기' 에서 동시에 벗어나는 연구방법론을 모색한다. 물론 커밍스의 수정주의에 균형을 잡으려는 연구는 이 책이 처음은 아니며 최근 1~2년 사이의 일도 아니다.

96년에 나온 박명림(미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구원)의 노작(勞作)『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나남)는 반격의 뇌관 구실을 했다. 때맞춰 소련의 비밀문서가 해금돼 주로 미국측 자료에 의존한 커밍스 연구의 허점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 자료들은 한국전쟁이 북한과 소련.중국의 합의 아래 계획된 도발이었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수정주의는 점차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커밍스 연구의 가장 큰 약점으로 이론적인 과적(過積)과 구조의 과잉을 꼽는다. 우선 당대의 객관적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는 실증적 접근보다, 역사와 사회의 변동을 장구한 흐름 속의 구조변화에 초점을 맞추다보니(이른바 구조주의 연구방법론이다) 결과가 원인을 유발하는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을 빚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이 내전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이 먼저 분단지향적이어야만 한다는 식의 논리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인 수렴과정을 거치는 '제3의 물결' 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현재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확실히 수정주의를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용도 폐기하자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비록 결론에 허점이 있긴 해도 빈약한 한국현대사 연구의 질을 높이는 한편 학제적(學際的) 연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커밍스는 여전히 '분수령'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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