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멍젠주 방한으로 드러난 씁쓸한 ‘중국 변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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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호 02면

중국의 치안 책임자인 멍젠주(孟建柱·65) 공안부장이 13일 서울에서 이례적인 외교 대접을 받았다. 단 하루 만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외교통상부·법무부 장관,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권력 실세 7명을 만났다. 중국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명박 정부가 중국에 얼마나 친절한지 말해주는 사료(史料)로 남을 것 같다. 멍 부장의 외교적 파트너인 김기용 경찰청장이 앞으로 중국에 갔을 때 과연 어떤 대접을 받을지 지켜볼 일이다. 2000년 4월 방중한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자춘왕(賈春旺) 당시 공안부장, 2005년 9월 방중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저우융캉(周永康) 당시 공안부장을 각각 만났을 뿐이다. 이런 관례는 한·미 간에도 적용된다. 우리 경찰청장이 미국에 가면 미 연방수사국(FBI) 책임자를 상대하는 게 외교 관례다.

중국 공안부장 자리는 출세 코스로 손꼽힌다. 중국 안에선 부총리급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멍 부장의 방한 행보를 보면서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기야 지난해 2월 멍 부장이 방북했을 때도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났다니 중국이 왜 그토록 남북한 등거리 외교에 집착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더 기막힌 것은 멍 부장의 방한을 계기로 제기되는 ‘물밑 거래설’이다. 중국 측이 단둥(丹東)에 구금 중인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 등 한국인 4명을 석방하는 대신 우리 정부는 지난 4월 서해상에서 해경에게 흉기를 휘두른 중국 어선 선원 등을 풀어준다는 내용이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야 ‘김영환 석방’에 대한 국민적 압력이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영해를 침범하고 공권력에 흉기로 맞선 이들을 풀어주는 게 장기적인 국익에 부합할지 의문이다. 한·중 간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갈등 게임이 펼쳐질 가능성이 큰데 우리 정부가 이번에 임기응변식 해법에 치우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한반도를 엄습하는 이른바 ‘중국 변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중 간의 대치전선 속에서 우리의 외교 포지션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심각히 고민해야 할 판이다. 중국과 일본·동남아 국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각종 영유권 분쟁과 힘 겨루기는 ‘중국 위협론’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에게 미·일보다 더 큰 교역·투자 상대국이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 시작될 경우 한국 경제가 받을 타격은 상상키 어려울 지경이다. 여기에 남북 관계의 중재자 역할도 있다. 멍젠주 부장에 대한 극진한 환대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외교 의전에도 적정 수준이라는 게 있다. 환대할 땐 환대하더라도 우리 외교의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는 ‘요인(要人) 외교’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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