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는 통화정책 개입 자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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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통화정책에 대한 행정부의 잦은 언급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은행은 28일 `미국 연준과 한국은행, 어떻게 다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은 행정부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해 공개적인 평가나 언급을 자제하고 연준도 물가안정 업적을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연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고하다고 밝혔다.

클린턴 행정부는 연준이 금리를 수차례 인상했을 때도 재무장관과 대통령경제자문회의 의장 공동명의로 `행정부는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하며 연준이 취하는 조치를 승인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물가나 경제상황이 악화되기전 금리를 미조정하는 선제적 통화정책과 10년간의 장기호황이 가능했던 것은 연준의 독립성과 연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은은 밝혔다.

반면 한국은 정부주도의 경제운용이 오래 지속되고 행정부가 통화정책에 대해 자주 언급함으로써 한국은행이 물가안정 주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으며 물가안정업적의 축적도 일천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98년 3월말까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재경부장관이 맡아왔기때문에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행정부의 지시에 따라 운용된다는 인식이 고착돼있는데다 한국은행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맡은 이후에도 행정부가 자주 금리정책을 공개적으로 언급,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인식확대를 저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의 이같은 지적은 최근 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 고위 공직자의 금리관련 언급이 잦아지면서 통화정책에 대한 개입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행정부가 매년 경제운용계획을 통해 물가목표를 발표하고 행정지도 등을 통해 국민생활에 직결되는 일부 물가와 공공요금을 직.간접적으로 규제함에 따라 물가안정의 주체가 중앙은행보다는 행정부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또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는 달리 금융시장이 잘 발달돼 있지 않은데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통화정책의 파급효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있는 점도 제약요인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통화정책이 독립적으로 일관성있게 수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의 역할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정부와 한은간 관계 재정립이 시급하며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한 금융시장 정비는 물론 행정부가 금융개입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진병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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