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송파여성축구단 '아줌마라고 얕보지 마세요'

중앙일보

입력

모두 숨을 죽였다. 5백여 관중의 눈길이 한사람의 발끝에 모였다.

송파여성축구단의 마지막 키커 양경근(43)씨는 떨릴만도한데 오히려 침착했다. '이긴다' 는 자신감을 담아 찬 공은 그대로 상대방의 골문을 흔들었다. 환호성이 터졌다. 그러나 이도 잠깐.

상대방 축구단의 마지막 키커가 등장하면서 경기장엔 다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공은 골문을 벗어났다. 연장전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경기가 승부차기끝에 3대2로 끝난 극적인 순간이었다.

송파구 방이동 성내천 둔치의 여성전용구장에서 만난 송파축구단 선수들은 지난 18일 여의도 한강둔치 축구장에서 열린 파필리오배 전국주부축구대회 결승전(사진)의 아슬아슬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너무 기뻐서 서로 끌어안고 난리가 났었죠. "

경기때 부딪혀 입술위가 퍼렇게 멍이 든 이정미(31)씨의 목소리엔 그날의 감격이 묻어났다. 창단 3년만의 우승인데다 여성축구동호인들 사이에서 최강으로 꼽히던 '적군' 을 꺽어 기쁨이 더했다.

"우리는 체력과 스피드의 우위를 살려 수비를 위주로 하다 기습을 노렸는데 주효한 것 같아요. "

경기를 읽는 눈도 웬만한 해설자 빰칠 수준이다. 우승이 우연이 아닌듯 연습 중 보여주는 드리볼이나 헤딩, 그물이 출렁할 정도로 골문을 가르는 슛이 예사롭지 않다. 동네축구쯤으로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칠 법하다.

이들은 매주 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씩 정기 훈련을 한다. 비가 올때는 실내에서 전술훈련을 할 만큼 열성이다. 단원은 모두 46명. 단장.부단장.감독.코치까지 있고 전업주부 와 교사.가게 주인 등 구성도 다양하다. 나이는 3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까지.

주장 김정희(41.주부)씨는 "축구를 한 뒤로 건강하고 활기있게 생활하자 처음에 반대했던 남편도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 고 말했다. 하지만 金씨가 얻은 건강만은 아니다. 늘 '태연이 엄마' 로만 불리던 金씨는 이곳에서만은 '정희 언니' 로 불린다.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돼더라구요. "

인생도 배운다고 한다. 슬럼프에 빠져 지난 대회에서 주전 자리를 내줬던 차미옥(41)씨. "너무 속상하고 힘들었는데 내가 주전으로 뛸 때 벤치에 앉아있던 동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참 많은 것을 깨닫게 됐어요. "

얘기가 길어지자 몸이 근질근질했던지 여러명이 아예 경기장으로 나가 공을 차기 시작했다. "한게임하자" 는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축구하는 꿈꾸다가 잠자리에서 남편을 걷어찬 적도 있어요. "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축구단 가입은 송파 주민만 가능하다. 02-410-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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