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모자 살인사건' 용의자 공판 스케치

미주중앙

입력

5일 오전 LA지방법원 103호 형사법정에서 `미라클 마일 한인모자살인` 용의자 로빈 조(53)씨의 선고공판이 열렸다. 착잡한 표정의 조씨가 검사 측의 최후 논고를 듣고 있다. 백종춘 기자

5일 오전 9시30분 '미라클 마일 한인모자 살인사건' 용의자 로빈 조(53)씨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 LA카운티 형사지법 103호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먹먹했다.

이날 법정에선 검사와 변호사의 최후 논고와 변론이 이어졌다.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가운데 15명 배심원단과 20여 청중은 입을 굳게 다문 채 프로젝터를 통해 공개된 사건 현장 사진들을 응시했다.

핏물에 잠긴 욕조 안의 시신 덕트 테이프로 손이 묶이고 입이 막힌 채 축 늘어진 피해자의 모습은 눈을 질끈 감게 할 만큼 참혹했다. 생전 엄마 품에 꼭 안겨 활짝 웃고 있는 현우(2)군의 사진이 나올 땐 훌쩍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판사와 검사 조씨의 변호사 법정통역관을 제외하고 입을 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날의 쟁점은 용의자 조씨의 사형 선고 여부였다. 조씨는 2003년 당시 이웃인 송지현(당시 30세)씨와 그의 아들 보모 민은식(당시 56세)씨를 총격 살해한 혐의로 지난달 26일 유죄평결을 받았다.

공판의 결과는 사형이거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 둘 중 하나다. 재판 막바지인 만큼 검사와 변호사 사이엔 날카로운 신경전이 계속됐다. 피해자들의 시신과 생전사진 유가족들의 육성파일 등을 제출한 프랭크 샌토로 LA카운티 검사는 "피해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살려달라며 매달렸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인사 한번 못하고 살해됐다"며 "'살고 싶다'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조씨의 말은 이해할 수 없다"고 사형 구형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아내와 자식을 죽였다는 누명을 썼던 송병철씨와 어머니(민은식씨)를 잃은 딸 크리스 김씨는 청중석 한가운데 나란히 앉아 미동도 없이 사진들을 지켜봤다. 사건이 발생한 날부터 9년 3개월 21일이 지났지만 그들의 표정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여성 9명 남성 6명으로 이뤄진 배심원단의 표정에서도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조씨의 변호를 맡은 앤드루 플라이어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감정적으로 치우쳐선 안 된다"며 "조씨에게 사형을 선고한다고 해도 피해자 3명은 영영 돌아오지 않고 조씨의 가족들에게 같은 상처를 남길 뿐"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조씨에게 합리적인 살해 동기가 없다고 주장하며 "한 손에 총을 들고 피해자 송씨를 테이프로 결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형을 받을 만한 증거도 없다"고 말했다.

최후의 변론도 배심원단의 상의도 예상시간을 훌쩍 넘길 만큼 길었다. 오후 2시쯤이 되자 검사와 변호사도 판사실로 향했고 텅 빈 법정엔 초조한 표정의 송병철씨와 크리스 김씨만이 남아있었다.

한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재판이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오늘 바로 판결이 나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는 두 사람은 소감을 묻자 "선고가 나오면 긴 이야기를 풀어놓겠다"며 법정을 나섰다.

조씨의 선고공판은 오늘(6일) 오전 9시30분에 속개될 예정이다.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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