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12] 무적함대 선장 ‘킬러’ 없이 전설 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델보스케 감독

볼록 튀어나온 배. 덥수룩한 콧수염. 스페인 축구대표팀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비센테 델보스케(62) 감독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배는 인복(人福)이고 콧수염은 전략(戰略)의 상징이다. 좋은 선수에 훌륭한 전략까지 더해져 스페인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는 ‘최강’ 스페인에 ‘전설’이라는 수식어를 하나 붙였다.

 스페인이 유로 2012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4-0으로 꺾고 앙리 들로네 컵을 품에 안았다. 유로 2008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이어 3개 메이저 대회 연속 우승이다. 세계 대회와 대륙 대회를 번갈아가며 3번 연속 우승한 건 스페인이 최초다. 유로 2008 득점왕 다비드 비야가 부상으로 대회에 불참했어도 스페인은 여전히 무적함대였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델보스케는 선수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박수를 보내다 자리를 떴다. 선수들끼리 축하 세리머니를 마음껏 하라는 배려였다. 선수들은 어린 자녀들을 경기장 안으로 데려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우승의 감격을 만끽했다. 델보스케가 늘 강조한 ‘가족 같은 분위기’와 딱 맞는 장면이다.

기자회견장에서는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이 유로 2008 때 완성해 놓은 팀을 그대로 유지한 것뿐이다. 오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선수들이다”며 공을 돌렸다.

 델보스케는 1970년부터 14년간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다 은퇴했다. 스페인 대표 경력은 18경기로 많지 않지만 지도자로서 더 큰 성공을 했다. 레알 마드리드 2군 코치로 시작해 1군 감독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스페인 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각각 두 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유로·월드컵·UEFA 챔피언스리그를 석권한 최초의 감독이지만 그의 모습은 동네 아저씨처럼 늘 소탈하다.

 하지만 전술은 과감하다. 대회 개막 직전 패스로 공을 돌리는 스페인 때문에 대회가 지루해진다는 지적이 나오자 “스페인이 경기를 할수록 어떻게 바뀌는지 한번 보라”며 자신했다. 스페인은 대회 내내 공격수 없이 미드필더 6명이 경기를 풀어가는 파격적인 ‘제로톱(Zero-Top)’ 전술을 사용했다. 6명이 상황에 따라 공격수 역할을 번갈아가며 맡아 상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몸값 900억원의 최전방 공격수 페르난도 토레스(첼시)를 벤치에 앉혀두는 강수까지 뒀다. 결국 스페인은 공격수 없이도 경기당 2골의 화력을 과시하며 현대 축구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델보스케는 “스페인은 역사를 썼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음 목표는 2014 브라질 월드컵이다”며 새 항해의 목적지를 밝혔다.

키예프(우크라이나)=김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