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예고된 인재 ‘앙카라 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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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송지훈
스포츠부문 기자

비극이었다. 그리고 망신이었다. 농구인들은 ‘앙카라 참사’라는 표현을 쓰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여자농구 대표팀의 런던 올림픽 본선행이 좌절됐다. 1일(한국시간)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일본과의 올림픽 최종예선 패자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51-79로 완패했다. 하루 전 치른 8강전에서 프랑스에 져 4강행에 실패한 한국은 일본과 캐나다를 연파해야 한 장 남은 본선 출전권을 따낼 수 있었다.

 일본전은 무기력했다. 1쿼터를 4-29로 뒤진 채 마쳤고, 3쿼터가 끝난 뒤에는 33-65로 32점 차까지 벌어졌다. 4쿼터엔 일본이 벤치 멤버들을 기용하며 여유를 부렸음에도 4점을 좁히는 데 그쳤다. 한국 여자농구가 국제대회에서 베스트 멤버로 일본에 패한 건 2006 도하아시안게임(70-74) 이후 6년 만이다.

 천재지변은 아니다. 오히려 ‘예고된 인재(人災)’에 가깝다는 것이 농구계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위험 신호가 감지됐지만, 선수단 구성을 주도한 일부 농구계 인사는 이를 무시했다. 세계 랭킹 9위라는 우리 여자농구의 외형만 믿고 근거 없는 희망을 품은 것이 문제였다.

 선수단 구성부터 삐걱거렸다. 대한농구협회는 최종예선을 앞두고 2009년부터 여자농구대표팀을 이끈 임달식(신한은행) 감독을 석연찮은 이유로 경질했다. 지난 3년간 임 감독이 각종 국제대회를 치르며 쌓은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도 소멸됐다.

 선수 선발 과정도 허점투성이였다. 대회가 국내 시즌 종료 직후라 주축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과 컨디션 저하에 시달리는 시기였지만, 구체적인 관리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늘 그렇듯 국제대회가 시작되면 선수들이 정신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일관했다. 무릎 부상 중인 장신센터 하은주(신한은행·2m2㎝)를 굳이 대표팀에 포함시킨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였다.

 사령탑 교체를 주도한 정미라 농구협회 기술이사는 “본선에 못 나가면 내가 옷을 벗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아니라 판단착오였다. 그를 포함해 책임을 질 사람들은 물러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남겨진 여자농구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당장 4년 뒤를 기약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팬들의 관심 하락 또한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앙카라 참사’는 정책 결정권자들의 허술한 준비와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송지훈 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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