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의 쉬운 풍경 16] 바람보다 빨리 눕는 풀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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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주도 서귀포 대정, 1992 ⓒ강운구

긴 수평선, 푸른 풀밭 위로 바람이 스쳐간다.

 누구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수평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크거나 작거나 간에 한 조직의 기능 때문에, 또는 다른 이유로 사람관계에 수직이 있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업무를 떠난 밖에서도 거의 그대로 통용된다.

 이 세상은 여러 층인 복합 다면체다. 그래서 평등하지 않으므로 평등해지려는 것이 사람들의 이상이다. 수평과 평등은 같은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야 사람은 수직관계에서도 평등할 것이다. ‘것이다’라고 한 것은 나는 다만 짐작만 할 뿐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난에 지금까지 열여섯 번 나간 사진 중에서 세로로 된 사진은 세 장뿐이고 나머지는 가로 사진이다. 이 세상이 가로로 길게 생겼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의 눈은 그런 세상을 가로로 한꺼번에 많이, 입체적으로 보라고 좌우로 두 개가 있다. 만약에 이 세상이 세로로 되어 있다면 아마 우리들의 눈은 아래위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고개를 아래위로 젖혀대느라고 좀 분주했을 것이다. 세로로 조판된 책을 읽을 때만 해도 고개를 자주 들었다 놨다 해야만 된다. 그림이나 사진으로는 그냥 보는 것과 달리 부분적으로 나눠서 구성해 보기도 하기 때문에 세로로 긴 사물은 그런 직사각형 틀에 담기도 한다. 세로로 긴 사진은 보기엔 약간 부자연스럽지만 좋은 점도 있다. 책이나 신문처럼 세로로 되어 있는 지면에서는 사진을 세로로 크게 할 수가 있다. 가로 사진은 기껏 커 봤자 지면의 가로 크기만 해질 수 있을 뿐이다. 아니면 책에서는(과감하게 신문에서도 중앙일보는 이따금) 두 페이지에 걸쳐 크게 하기도 한다. 책이나 신문과는 달리 영화관이나 텔레비전의 화면은 다 가로로 길다. 본디 책이나 신문은 글을 게재하려고, 스크린은 영상을 비추려고 만든 형태여서 그렇다. 최근의 스크린은 점점 커지면서 가로로 더 길어졌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 알맞은 비율은 가로와 세로가 3:2로 알려져 있다. 가장 보편적인 35㎜ 필름 카메라가 바로 그 비율로 찍는데, 황금분할에서 비롯되었다.

 제주 바닷가 둔덕의 돌담도 그 너머의 수평선도 다 가로로 자연하다. 바람 방향도 그렇다. 한 해의 딱 절반인데, 이미 할일 다한 띠 풀의 익은 이삭이 바람에 살짝 누웠다. 자연에는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 풀은 없다. 수직의 인간 세상에서라면 몰라도.

[강운구의 쉬운 풍경은 이번 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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