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담화' 일본 정부·언론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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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 대해 일본 정부는 공식 대응은 자제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 내부에선 반발이 거셌다. 언론들도 미래지향적 외교와는 거리가 먼 발언으로 평가하면서 냉담한 논조를 보였다.

◆정부=정부 대변인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은 24일 "양국 정상의 상호방문은 계속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독도 사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문제에 대해선 "선택 방안의 하나지만 정부 내 통일된 견해는 없다. 제소는 관계국의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외무성은 24일 회의를 거듭한 끝에 공식 반응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 관계자는 "어떤 형식으로든 반박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으나 냉각기간을 갖는 편이 더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무성 관계자는 내부적으론 반발 의견이 강했다고 전했다. "외교를 포기하겠다는 말이냐" "국제사회에선 한국의 논리가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등 격앙된 발언이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재군비'란 용어로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문제삼은 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한국 정부의 공식문서에선 처음 등장한 단어다. 외무성의 중견 간부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은 국제사회가 높이 평가하는 일"이라며 "학계나 언론이라면 모를까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정계에서는 보다 직설적인 비판 발언이 나왔다. 특히 자민당 내에서는 정부의 확실한 대응을 촉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방위청 장관을 역임한 나카타니 겐(中谷元.자민당) 의원은 "자위대는 해외에서 무력행사를 하지 않기로 정해져 있는데 이를 재군비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야당인 민주당의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 의원은 "지금까지 쌓아온 양국관계를 시궁창에 내다버리려는 듯한 담화"라며 "이대로라면 북한이 어부지리를 얻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대표는 23일 "외교적 노력이 부족했다"며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언론=아사히(朝日)신문은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조용한 미래지향 외교와의 결별선언'이라고 표현했다. 아사히는 특히 노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 대해 "다음달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론이 납득하기 쉬운 역사마찰을 거론해 선수를 쳤다"고 분석했다. 또 "올 상반기로 예정된 한.일 정상회담은 현재로선 성사를 내다보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노 대통령이 통렬히 일본을 비판한 것은 반일 일색으로 물든 여론을 등에 업고 자신의 정치 스타일인 '정면돌파' 수법으로 일본 정부의 대응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강력한 비판을 일본 정부가 '국내용'발언으로 치부한 뒤 한국 정부의 태도가 더욱 경직되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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