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 돈이다, 일등기업으로 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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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에게 마스크가 없었다면 투수는 강속구를 던지지 못했을 것이며 야구는 지금처럼 재미있는 스포츠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1906년 미국 철강업이 불황의 늪에 빠져들 때였다. 철강업체 US스틸의 게리(E. H. Gary) 사장은 경영 방침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생산 제일이 아니라 안전제일이다.” 부상당한 근로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내린 결단이었다. 그는 생산에 다소 지장이 생기더라도 근로자가 다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안전을 앞세우면 생산이 줄고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경영방침을 바꾼 뒤 그의 우려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생산성은 향상되고 제품의 질은 오히려 좋아졌다. 근로자들 사이에 ‘우리 회사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생긴 변화였다. 근로자들의 애사심이 높아지고 숙련된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고 장기 근속하면서 만들어진 결과였다.

미국의 듀폰사에는 특별한 인사방침이 있다. ‘안전의식이 떨어지는 사람은 리더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안전을 통해 회사에 이익을 남겨라. 사고로 1억원의 생돈이 지출될 경우 그 돈을 벌충하려면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전이 좋은 실적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듀폰사의 평균재해율은 0.036%에 불과하다. 미국 전체 산업계의 평균재해율 2.1%의 70분의 1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도 안전을 경영에 접목시켜 안전경영체계를 구축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안전이 곧 생산성이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예방이 가능하지만 한 번 발생하고 나면 소중한 생명을 잃게 할 뿐 아니라 기업의 목표 달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기업이 공들여 쌓은 좋은 이미지도 단번에 무너뜨린다.

안전 경영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동시에 직원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도 연결돼 있다. 직원의 근로 여건과 건강 상태를 세심하게 보살핌으로써 집중력 저하나 피로로 인한 각종 사고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STX는 ‘살 맛 나고 일할 맛 나는 사업장’은 건강·안전·환경(HSE, Healthy· Safety·Environmental)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고 안전하며 깨끗한 조선해양기지’라는 ‘HSE 경영방침’을 내걸고 무재해·무질병·무공해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STX는 산업재해 예방과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을 위해 ‘HEART’라는 자체 안전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근로자 건강 상태가 안전 재해와 직결된다고 믿는다. 잠재 위험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예방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건강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이런 철학이 반영된 때문이다. 이 회사는 근로자가 잘못된 자세나 신체에 부담을 주는 작업을 할 경우 생길 수 있는 근골격계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예방운동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GS칼텍스는 매년 경영 목표를 세울 때 ‘무재해 달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1999년부터 분기마다 약 20명의 임직원으로 구성된 ‘환경안전협의회’를 개최해 회사의 환경건강안전(EHS·Environment Health Safety)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고, 수행 성과를 확인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GS칼텍스 사업장에서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압가스와 충전시설 분야에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

안전경영을 위해 조직을 개편한 회사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올 초 안전보건환경(SHE)본부 조직을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개편했다. SHE는 안전(Safety)·보건(Health)·환경(Environment)의 약자로 이 회사 안전경영의 핵심 가치다. 구자영(64) SK이노베이션 사장은 “글로벌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재무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안전경영도 글로벌 스탠더드가 돼야 한다”며 “이를 운영하는 사람과 설비가 글로벌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울산·아산·전주·화성·소하리·광주 등 국내 모든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경영시스템 18001’ 인증을 획득했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은 작업장에서의 위험성과 유해 발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로 생산 현장의 안전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같은 인증 획득을 통해 현대·기아차는 재해율을 줄이고 예방관리 시스템을 통한 생산성 향상 효과를 보고 있다.

롯데마트나 신세계백화점 같은 유통 업체들은 여름철을 맞아 식품 안전에 각별히 정성을 쏟고 있다. 롯데마트는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식품에는 ‘30분 원칙’을 적용한다. 식재료가 30분 이상 상온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사용한 조리 도구는 30분 안에 씻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냉장실에서 꺼낸 지 30분이 지난 재료는 폐기해야 한다. 신세계백화점은 식품 관리 규정을 세밀하게 만들었다. ‘김밥용 김발은 10번 이상 쓰지 말 것, 완성된 김밥은 0~15도 사이에 보관하고, 만든 지 5시간이 지난 경우엔 팔지 말고 버릴 것’ 등이다. 신세계백화점 측은 “면역과 세균 저항성이 약한 아기가 먹어도 안전할 정도의 기준을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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