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축구의 무한한 힘

중앙일보

입력

모파상의 단편소설 '비곗덩어리' 는 19세기말 프랑스와 프로이센(옛 독일)의 전쟁인 보불전쟁이 배경이다.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탈출하려는 프랑스인 몇명이 마차를 탄다. 마차에는 '비곗덩어리' 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창녀 엘리자베스가 타고 있었다. 모두들 그녀를 경멸하고 무시한다.

그러나 국경수비대 장교가 국경 통과를 눈감아 주는 조건으로 그녀와의 동침을 요구하자 그들은 창녀에게 갖은 아부를 한다. 결국 창녀의 희생으로 탈출에 성공한 프랑스인들은 다시 창녀를 멸시한다.

상황에 따라 간사하게 변하는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꼬집은 단편소설의 바닥에는 독일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적개심이 깔려 있다.

마치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갖고 있듯이 역사가 연출해낸 어두운 그림자가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독일인에 대해 부정적인 의식을 갖게 한 것이다.

이번 주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진 축구 라이벌전이 팬들을 흥분시켰다. 프랑스 - 독일, 잉글랜드 - 스페인,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전이 모두 라이벌전이었다.

6개 나라 중 스페인을 제외한 나라들은 모두 월드컵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거나 내년 월드컵에서도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이고 세계적 스타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시청한 팬들이 꽤 많았다.

프랑스는 지단의 결승골로 영원한 라이벌인 독일을 1 - 0으로 이겼다. 프랑스는 1938년에 이어 지난 월드컵까지 두차례 월드컵을 개최한 축구 강국이다. 유럽축구의 한 축을 지탱하던 '전차군단' 독일을 꺾은 것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환호했다. 98년 월드컵을 개최하며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는 축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잠시 프랑스 우승의 순간으로 되돌아가 보자.

결승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스코어보드에 '프랑스 3 - 0 브라질' 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새겨졌다. 생드니 경기장에 영국의 전설적 록그룹 퀸의 'We are the Champions' 가 장엄하게 퍼지는 순간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조스팽 총리는 정치 노선에 상관없이 하나가 돼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다.

프랑스는 이원 집정제 국가로 우파 출신 대통령과 좌파의 총리가 수시로 충돌을 빚었지만 월드컵 우승이라는 거대한 이벤트 앞에서 화합의 미덕을 보여줬다.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은 다양한 피부색으로 구성된 프랑스 대표팀의 약점을 날려버린 한편의 멋진 드라마였다. 지단은 아르헨티나 혈통이면서도 출신지는 알제리, 수비의 핵 마르셸 데사이는 가나, 공격형 미드필더인 조르카에프의 부친은 아르메니아 사람이다.

프랑스의 우승이 확정된 후 샹젤리제 거리는 수많은 군중으로 가득 찼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개선문에 비춰진 프랑스의 영웅 얼굴들을 보며 온 국민은 환호했다. 서로 껴안고 엉엉 울기도 했고 거대한 프랑스 국기를 밤새 흔들고 국가를 불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4백g 남짓한 축구공의 마력과 계측 불가능한 축구의 무한한 힘을 느꼈다. 축구는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시키기도 하고 정치적 화합을 도출해 내기도 한다.

우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까. 우리의 영원한 숙제인 남북통일을 견인해 내고, 내부 갈등을 해소해 주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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