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논리로 주주권 행사할 수도 국민연금, 정부서 먼저 독립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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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의무화한 법안을 ‘기업 옥죄기’로 규정하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해 4월 곽승준 청와대 미래기획위원장이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를 주장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지만 한층 초조한 기색이다. 유럽발 재정위기로 경영여건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익명을 원한 10대 기업의 한 임원은 24일 “경제를 자꾸 정치 논리로 풀려고 하는 게 문제”라며 “이번 제도 도입으로 의사결정 시스템의 속도가 떨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국민연금의 안전성·수익성을 위해 지금처럼 재무적 투자자의 관점에서만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또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강제화하고 사외이사 추천을 의무화하는 것은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기업의 고유 영업활동에 개입한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기업들은 ‘경영권 간섭’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곽 위원장은 특정 회사의 지분구조를 거론하며 “기존 아이템에 안주하려는 경영진이 경제와 경영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시된다”고 말해 이 같은 우려를 증폭시켰다. 전경련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상장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면서 관치 목적으로 지배구조나 경영권에 간섭하는 건 운영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금 사회주의’에 대한 경계심도 나온다. 앞으로 연금 규모가 커지면 결국 국가가 기업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경총 관계자는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한 외국의 경우 보통주보다 의결권 권한을 더 갖는 ‘황금주’처럼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며 “연금 운영의 중립성을 갖추지 않은 채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1960~70년대 관치행정을 답습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정치 논리에 의해 기금이 운용되거나 주주권이 행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이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먼저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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